‘위탁수수료 담합’ 가락시장 도매법인, 과징금 91억원 취소

공정위 상대 소송 일부승소
하역비 출하자 전가 면죄부
공정위, 대법원 상고 준비

  • 입력 2020.02.09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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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위탁수수료를 담합해 하역비를 출하자에게 전가한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이 수십억원대의 과징금을 면했다. 도매법인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과징금 취소 내용을 담은 도매법인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청과·동화청과·중앙청과·서울청과 등 가락시장 4개 청과도매법인들은 2002년 출하자 위탁수수료를 ‘4%+정액 하역비’ 형태로, 2009년 중도매인 판매장려금을 ‘0.6%’로 담합해 지난 2018년 공정위의 처분을 받았다. 공정위는 당시 위탁수수료 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액 116억원을, 판매장려금 건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특히 위탁수수료 건은 법률 개정으로 도매법인이 부담하게 된 표준하역비(포장출하품 하역비)를 16년 동안 출하자에게 부과해온 내막으로 농민들의 관심과 분노를 샀다.

당시 서울청과는 혐의를 자진신고해 과징금을 면제받았지만 나머지 한국·동화·중앙청과는 불복소송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위탁수수료 건에 한해 원고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3개 도매법인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1억원을 취소시켰다(판매장려금 건 시정명령은 유효).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의 위탁수수료 담합에 총액 11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도매법인들의 불복소송으로 부과됐던 과징금 전액이 취소됐다. 공정위는 대법원 상고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초 가락시장에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의 위탁수수료 담합에 총액 11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도매법인들의 불복소송으로 부과됐던 과징금 전액이 취소됐다. 공정위는 대법원 상고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초 가락시장에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재판부는 도매법인들이 위탁수수료를 출하자와 협의하지 않고 서로 담합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행위가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①출하자들이 도매법인을 선택하는 핵심 요소는 위탁수수료보다 경락가격 형성 능력이며 ②도매법인들의 담합이 오히려 시장의 불안정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판결을 반기는 도매법인들과 달리 상당수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①의 판단과 달리 법인별·품목별로 가격등락이 심하고 예측이 어려운 농산물 경매의 특성상 위탁수수료는 출하자들의 1차적 선택기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가락시장에선 위탁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출하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진도 대파 생산·출하자인 곽길성 가락시장 품목별생산자협의회장은 “출하자들은 운송비 1만~2만원에도 민감해하는데, 위탁수수료를 1% 인하한다 치면 한 트럭당 10만원이다. 게다가 출하자가 도매법인을 선택할 때 눈으로 확인 가능한 수치가 위탁수수료밖에 없지 않나. 도매법인의 담합과 과도한 수익을 묵인해주려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며 판결에 불신을 드러냈다.

②의 판단도 매끄럽지 않다. 재판부는 ‘만약 피고의 주장처럼 위탁수수료가 출하자들의 중요한 선택기준이라면 위탁수수료를 인하하는 도매법인에 출하량이 늘어 폭락·폭등이 심화했을 것’이라며 스스로 틀리다고 한 명제에 근거해 가정을 세우고는 도매법인들의 담합이 이를 예방했다고 평했다. 이율배반적인 논리에 시장 관계자들은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은 과도한 수익과 변화에의 저항으로 최근 사회적 지탄과 개혁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국회 농안법 개정과 공정위 과징금 처분 등 전방위적인 개혁 시도가 번번이 벽에 가로막히고 있다.

이번 판결은 도매법인들의 위탁수수료 담합뿐 아니라 표준하역비 출하자 전가 행태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다. 해당 소송은 1심이 고등법원 관할로서 공정위는 현재 대법원 상고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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