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영농계획

  • 입력 2020.02.02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올해는 하얀 쥐의 해라 합니다. 원래 쥐라는 동물이 호감형은 아니지만 나라를 국밥처럼 말아드신 전직 대통령 덕에 이미지를 한층 망쳐버린 것 같습니다. 해마다 설날 즈음엔 온갖 방송에서 ‘소의 우직함’이니 ‘영리한 토끼’니 하면서 새해의 덕담으로 호들갑을 떨기 마련인데 올해는 좀 덜한 듯합니다.

쥐는 부지런한 동물입니다. 영리해서 자연의 위험을 미리 인지하기도 합니다. 음식을 모아두기도 잘 하고 가족끼리 나눠먹기도 잘합니다. 생존력이 강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노동(?)을 합니다. 이러한 특성들이 인간의 소망과 만나 십이간지 중 으뜸이 됐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쥐 하면 연상되는 전직 대통령도 그런 면에서는 외모 뿐 아니라 습성까지 쥐를 많이 닮기는 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부지런함과 영리함이 안 좋은 방향으로 기가 막히게 터져서 문제지만요.

쥐처럼 부지런하고 슬기롭고 공동체를 위해 노동하고 나누고 모아두는 것이 몸에 배인 사람들은 사실 우리 농민들입니다.

가을걷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종자를 고르고, 영농교육에 비료, 퇴비 준비까지 농사는 끝도 시작도 애매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우스 농사를 하는 집들은 벌써 모종 준비를 하고 노지농사를 하는 사람들도 할 일 없이 논두렁 밭두렁을 어슬렁거리면서 한 해 농사 궁리로 마음은 벌써 오월 모내기 판으로 달려가는 듯합니다. 가뜩이나 춥지 않은 겨울은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농사꾼의 속을 더욱 안달나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가뭄에 태풍에 병충해에 녹초가 된 채 가을걷이를 하면서 수도 없이 때려치우기를 다짐했던 사람이 다시 저 논밭을 향해 온몸으로 한 판 붙어 보자고 날을 벼리고 있습니다. ‘일중독’이라고 서로서로 농 섞인 흉을 보면서도 자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풍년농사 지으리라 다짐을 합니다. ‘일중독’이라기보다는 수만 년 이어온 노동하는 인간의 ‘유전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눈물과 한숨과 감동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외세의 침탈과 봉건의 착취에 맨몸으로 나선 동학농민에서부터 3.1운동, 항일해방투쟁.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무산과 한국전쟁, 4.19, 5.18, 6월항쟁에서 촛불혁명까지… 밟아도 죽여도 씨가 마르지 않고 일어서는 민중들의 저항.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역사농사’의 유전자가 우리 농민에게는 고스란히 각인돼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올해 아스팔트 농사짓는 우리들도 논두렁에 서서 희망의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안달나는 영농계획이 있습니다.

잠시 멈춰 있는 통일트랙터를 어서어서 분단선 너머로 보내야 하는 통일농사.

촛불로 정권은 바꿨지만 아직 갈아보지도 못한 농업적폐 청산농사.

4년 전 총선에서 제기하고 꾸준히 가꿔서 이번 총선에서 수확해야 할 농민수당농사.

김영호 전 의장님의 결심 소식이 아스팔트 농사꾼의 가슴에 다시 불을 당깁니다.

아침밥 단단히 먹고 전주성문을 열어젖히던 동학 농민들처럼, 자주독립국가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얼어붙은 지리산 골짜기를 내달리던 빨치산 농민처럼, 박근혜 독재를 종식시킨 자랑스런 전봉준 투쟁단의 각오로 아스팔트 풍년농사를 지어 봅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