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아직도 그렇게나 ‘구식’ 일까요?
농촌은 아직도 그렇게나 ‘구식’ 일까요?
  • 한우준 기자
  • 승인 2020.02.02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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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⑭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12월 28일 대동계의 날, 점심식사를 위해 마을회관에서 전을 부치는 할머니들.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는 보통 여성들의 몫입니다.
지난해 12월 28일 대동계의 날, 점심식사를 위해 마을회관에서 전을 부치는 할머니들.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는 보통 여성들의 몫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똑같이 농사일에 헌신하지만 가사까지 도맡아야 하는 것이 농촌의 여성들입니다. 청년농민이라는 계층이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는 농촌의 오랜 관습에 아직 묶여 있는 기성세대의 농민들에게 특히나 해당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요즘 도시 가구의 모습과 청년들의 생각은 제법 변했다고도 하는데, 지난 명절을 소재로 지금 농촌의 시계는 어디쯤 머물러있는지 알아봅니다.

 

4일의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달 28일, 관지미 마을회관의 ‘점심모임’이 오랜만에 열렸습니다. 제겐 2020년 새해 들어 첫 관지미 방문입니다. 반년을 다녔더니 이젠 제법 ‘눈치밥’이 쌓여, 어느 날 어느 시쯤 가야 어른들을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략의 감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비록 명절엔 저도 부모님을 뵙느라 찾아뵙지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새해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늘 개근하시던 박순자 할머니가 노인회 일로 아침 일찍 면에 나가시느라 빠진 것을 제외하면 인원 구성은 전과 동일하군요.

박 할머니가 없으니 식사 준비는 강창성 할머니 홀로 주관하게 됐습니다. 마을회관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들에 더해 쇠고기 미역국, 배추전, 그리고 계란말이를 하시려는 듯합니다. 주방에 한 자리가 비었으니, 강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자마자 저도 돕겠다고 나서봅니다.

“도와주려고? 그래, 나중에 결혼한 다음에 색시 도와주는 연습한다 생각하고 한 번 해 봐.”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종종 함께할 때마다 저도 식사 준비를 함께하려고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치곤 나름 많은 끼니를 직접 차려 먹는다고 자부하는 편이나 그 수준이 일명 ‘자취 요리’에서 대부분 벗어나지 못하는 바, 늘 두 할머니의 50년 넘는 경력 앞에 별 도움은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수준도 수준이지만, 보통 자력으로는 ‘단 한 가지’의 메인 요리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익숙한 세대다 보니 이렇게 동시에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직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이죠.

어쨌든 일이 배정됐습니다. 강창성 할머니는 미역국에 들어갈 사태를 삶으면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또 밥도 얹습니다. 연로하신 신옥순 할머니는 시금치를 손질하고, 저는 배추전을 만들었습니다.

반죽을 묻혀 프라이팬에서 적당히 굽다 뒤집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입니다. 다만 배추전은 중불에서도 빨리 뒤집지 않으면 쉽게 타는데, 이 쉬운 요리마저도 배추 몇 점에 살짝 그을음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양이 꽤나 많았다는 게 댈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습니다. 열심히 뒤집고 있자니 지켜보던 김상만 할아버지로부터 말이 나옵니다.

“한 기자, 이제 거기도 가서 일해?”

설 이후 첫 ‘점심모임'에서 식사 준비를 주관하신 강창성 할머니. 배추전 부치는 일을 도와드렸지만 그럼에도 혼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설 이후 첫 ‘점심모임'에서 식사 준비를 주관하신 강창성 할머니. 배추전 부치는 일을 도와드렸지만 그럼에도 혼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 순간 주방 일에서 열외된 단 한 사람, 남성인 김상만 노인회장님은 지금까지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까는 등 재료 손질만 돕다 이번엔 주방기구 앞으로 간 제가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물론 노인회장님도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화덕에 불이 나오지 않으면 회관 바깥으로 나가 LPG 가스통을 교체하고, 아궁이 불을 쓰는 날이 있으면 땔감을 구해다 넣고 수시로 불을 지키는 등 요리하는 동안 요구되는 여러 가지 잡일의 처리를 맡죠. 허나 일이 구분돼 있다 한들, 온갖 반찬을 곁들여 밥을 차리고 또 치우는 수고에는 아무래도 비할 바가 못 될 것입니다.

해서 요즘 젊은이들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혼자 벌어서는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도시 부부의 삶이죠. 생계의 문제를 떠나, 누구나 사회적 진출을 통해 자존감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적에 아예 서로 맡을 집안일을 확실히 나눠 못 박고 시작하기까지도 하죠. 벌이도 같이 하니 집안일도 같이하자는 건 당연한 요구입니다(설령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사를 전부 도맡는 건 불공평하지요).

나아가 생각해보면, 부부를 넘어 가족 단위로 노동력을 쏟는 농촌에서는 원체 아주 옛날부터 이런 요구가 등장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농촌의 여성들은 수십 년도 아닌 수백 년 전,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가부장적 사고와 힘의 논리에 짓눌려 왔고, 농촌의 이런 관습은 2020년을 맞이한 지금도 (특히 고령층으로 갈수록) 겉에서 봤을 때는 큰 변화가 없는 것만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옛날엔 남자가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고 했어.”

신옥순 할머니도 부엌의 저를 보곤 한 마디를 보태자 강 할머니가 다 안다는 듯 받아칩니다.

“시방 요즘 남자들은 혼자서도 다 해먹는대. 핸드폰에 다 있는데 뭐.”

핸드폰에 다 있다는 말에는, 스마트폰에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음식 이름만 검색하면 요리법이 순식간에 튀어나온다는 설명이 축약돼 있습니다. 새삼 어르신들이 이런 것도 알고 있구나 하고 놀라는 사이, 한편 신 할머니는 겸상 얘기도 꺼냅니다.

“옛날에는 조금만 높은 사람을 만나면 젓갈질을 못했어. 시집가서 시부모하고도 같이 못했어.”

말이 느리고 목소리가 크지 않은 할머니를 대신해 강 할머니와 노인회장님이 설명을 도와줍니다.

“이장이 초대를 해서 면장이 밥을 먹으러 왔어. 면장이 와서 먹는데 옥순 할머니 보고는 (여성이지만) 어른이니까 오시라고 그랬대. 옛날 같았으면….”

“옛날 같으면 순사네 일꾼하고, 그러니까 순사도 아니고 일꾼하고만 겸상해도 출세했다고 했지. 그전에는 기수(제수)하고도 밥 먹는 적이 없었어. 거리에서 지나가도 웬수진 것 마냥 외면하고 지나갔지.”

“시방은 지수(제수)하고 친구여, 성진이 엄마하고 관형이하고 사촌 기순데, 지금은 맞친구여.”

그러니까, 해석을 하자면 예전엔 고생토록 밥을 차려도 같은 집에 사는 시부모님조차 같이 밥을 먹지 못했으며, 밖에선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유주영 이장님과 그 남편 김기형 씨의 사촌 관계인 주민 김관형 씨는 예전 같았으면 겸상도 못할 관계지만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요번 설 음식 할 때, 아드님들도 좀 도와주세요?”

“만두 많이 만들었지. 며느리는 피를 빼서 찧고, 아들은 만들고, 할아버지도 찧고, 손자는 가지고 나르고, 손녀딸은 담고. 그럼 나는 물 뿌리고 시루에다 만두를 끼우는 거야.”

“와 다들 하시는구나. 옛날하고 비교하면 어떠세요?”

“훨씬 더 수월하게 하지. 그래도 제일 힘든 거, (만두)소는 걔들 오기 전에 내가 다 만들어놔야 해.”

“아이고, 우리 아들은 하두 찢어서 먹을 게 없드만.”

“그렇게 할까 봐서, 내가 싹 맞춰서 반죽을 담아놔.”

“그러니까 다들 내려오기 전에 제일 어려운 건 준비를 다 해 놓으시는 거네요.”

“그래도 죽는디야. 한바탕 하고나면 그냥 다 들어가서 자. 딸이 그래도 제일 열심히 만들어. 완전 달라서 다들 걔가 만든 것만 집에 가지고 가려고 했어.”

유주영 이장님이 SNS에 올려 자랑하신, 설에 만두 빚는 남편 김기형 씨. 그동안 엄청난 만두를 다 만들어 내셨던 시어머님은 손끝이 무뎌져 만두 대신 더덕을 까는 일로 만족하시고 계신다네요.
유주영 이장님이 SNS에 올려 자랑하신, 설에 만두 빚는 남편 김기형 씨. 그동안 엄청난 만두를 다 만들어 내셨던 시어머님은 손끝이 무뎌져 만두 대신 더덕을 까는 일로 만족하시고 계신다네요.

 

바뀐 인식은 농촌에도 조금이나마 스며들어, 이번 명절에 어르신들은 집집마다 찾아온 자식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만두를 함께 빚고 전을 부쳤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래도 제일 힘든 일은 역시 할머니들의 몫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까지 나서 일을 하는 것이 분명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모습입니다.

“어쨌거나 미리 준비해야 하는 할머니가 가장 힘드시잖아요.”

요즘 도시에선 아예 제사를 치르지 않거나, 밖에서 제사 음식을 사서 지낸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힘이 든다면 이것도 방법이라면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해 생각을 여쭈니 돌아오는 대답은,

“일 년에 한두 번인데, 그렇게 해야 애들도 좋은 거 실컷 먹고, 제사도 지내지만 그걸 누가 먹어, 다 내 새끼랑 내가 먹는 거지. 사서 하는 건 제일 싫어해. 그거는 (제사) 지내고 나면 하나도 안 먹어. 다 버리는 겨. 녹두며 재료가 수입이라 아주 맛도 없어. 요즘 젊은 애들은 참….”

성인지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남녀 역할의 구분선이 아직 선명한 농촌에서 불평등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농촌의 의식 수준이 낮지 않을까 하는 기존의 추정은 적어도 수정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우리가 보기 불합리한 것 같은 장면들에 영향을 끼치는 숨은 요소가 있고 이는 남녀를 떠난 문제라고 하는데, 엄춘옥 부녀회장님께 따로 가 여쭈니 이렇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전에 어르신 한분이 씀바귀 엄청 캐 오시는 거 보셨죠? 그거 본인이 좋아서 드시려고 그러셨겠어요? 회관에 사람이 모이니 나눠주려고, 좋아서 가져오신 거지…. 그런 것처럼, 마을 안에서 남자들도 자기가 잘하는 일로 다 몫을 하려고 해요. 김관형씨나 노인회장님 회관에 대청소나 큰일 생기면 힘든 일 주저 않고 많이 해주시고. 저도 도시 생활을 오래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농촌의 생활수준이나 인식의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아요. 직업이 농사고 블루컬러일 뿐, 다 똑같은데 그저 농촌에선 베푸는 정이 좀 더 중요할 뿐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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