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태풍 여파 … 제주농민들 ‘추운 겨울’

노지감귤 끝내 반등 없이 마무리
가격 좋은 엽근채류도 실속 없어

  • 입력 2020.02.02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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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태풍 링링·타파·미탁 등 지난해 가을을 휩쓸었던 기상이변이 수확기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제주 농민들을 울상짓게 하고 있다. 감귤·양배추·당근·무 등 제주의 대표적인 겨울작물들이 모두 어두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감귤 피해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태풍과 가을장마에 상하고 당도가 떨어진 노지감귤은 지난해 10월 첫 출하부터 폭락에 직면했다. 5kg 평균가격이 겨우 8,000원대에서 시작해 12월 한때 5,000원대까지 내려앉는 절망을 맛봤다. 출하 중·후기부터 당도와 품위가 올라왔음에도 한 번 돌아선 소비자들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농민들이 제주도청 앞에 감귤을 쏟아부으며 절규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사실상 수확이 마무리된 지난달 말까지 노지감귤은 끝내 제 가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격 출하가 시작된 만감류조차 레드향을 제외하면 모두 평년 미만의 가격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감귤로 적자를 볼대로 본 감귤농가들이 만회는커녕 추가 적자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달 13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밭에서 농민들이 당근을 수확하고 있다. 이날 만난 농민은 세 차례 태풍과 잦은 비로 파종에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13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밭에서 농민들이 당근을 수확하고 있다. 이날 만난 농민은 세 차례 태풍과 잦은 비로 파종에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엽근채소인 양배추·당근·무는 평년대비 상당히 좋은 가격을 기록하고 있다. 역시 지난해 가을 장마와 태풍에 대규모 유실 및 생육 피해가 발생하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하지만 높은 도매가격이 농가소득과 직결되진 않는다. 태풍이 무자비하게 쓸고 간 제주의 밭엔 성한 농산물이 드문 지경이다. 대표가격인 상품 가격은 높지만 중·하품과의 가격격차가 벌어지고, 출하는 대거 중·하품으로 몰린다.

김학종 제주양배추연합회장은 “품위 간 가격차이가 큰데 막상 산지엔 상품으로 출하할 게 없다. 가격이 좋아도 큰 돈 버는 농가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날씨가 따뜻해 전라도 쪽 작황이 좋은 것 같다. 3월쯤 넘어가면 가격이 점점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채소류 중 가장 심각한 건 월동무다. 지난달 상순 상품 20kg당 최고 3만원대의 고공행진을 한 월동무지만 업계에선 일찌감치 폭락을 예견해왔다. 지난해 늦은 시기에 태풍 피해를 입은 탓에 대부분의 작목이 재파를 하지 못했고, 비교적 파종기가 늦은 월동무로 재파가 몰렸기 때문이다. 따뜻한 겨울날씨에 생육마저 빨라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가격 하락이 진행 중이다.

가락시장 관계자는 “최근 무 상품 가격이 1만5,000원대까지 떨어졌다. 2월 말에 나와야 할 것들이 1월 초부터 나와 벌써부터 재고가 쌓이고 있다. 선거철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소비도 급격히 위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생산이 급격히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수입물량도 부쩍 늘어나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평시 수십 내지 수백톤에 불과하던 신선 무·양배추 수입이 지난해 11월 각각 1,370톤·4,027톤, 12월엔 1,392톤·4,500톤으로 폭증해 있다. 도매시장 반입은 제한적이지만 국내산 가격 형성에 분명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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