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천하위공(天下爲公)과 농업의 사회화

  • 입력 2020.02.02 18:00
  • 수정 2020.02.07 16:44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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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천하위공(天下爲公), 즉 ‘세상은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명제는 중국 고서 <예기>에 나온다. 예기 <예운> 편에는 ‘진리가 행해지면 세상은 모든 사람의 것이 되며 이를 대동(大同)이라고 말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어찌 중국 고서에만 이런 명제가 나왔겠는가. 동서양의 무수한 경전과 글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명제가 나왔을 것이며, 특히 대부분의 종교는 이를 바탕으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천하위공’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이 단어가 주는 역사적, 시대적 메시지 때문이다. 신해혁명을 일으켜 구체제인 청조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일한 중국의 국부 쑨원은 혁명의 무기로, 우리 민족의 스승 김구 선생은 독립사상으로 이 문구를 애호했다. 그런데 다시 이 단어가 소환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시대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때문이다. 얼마 전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됐듯이, 전 세계 억만장자 2,153명이 46억명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세상, 전 세계 상위 1%의 부유층이 69억명이 보유한 부의 두 배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이제 이런 세상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것인가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 농업에서 공적 영역이 무너진 지 오래다. 마을공동체가 무너지고 토지가 극도로 사유화됐다. 심각한 인구 감소로 이제 공동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됐다. 구체제에서 고착화된 협동조합은 관제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 만들어진 많은 협동조합과 영농조직은 농업 여건의 악화와 인구의 감소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무너진 공적 영역을 회복하기 위해 부랴부랴 심폐소생을 하듯 사회적 경제, 사회적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사회적 자본, 사회적 금융, 사회적 농업 등 온갖 ‘사회적’ 조직을 만들고 지원했지만 우리의 농업과 농촌은 쉽게 살아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들이 모두 ‘사회적’ 수사에 그치기 때문이다.

최소한 농업엔 경쟁과 효율에서 벗어나 ‘사회적’ 정책이 아닌 ‘사회화’ 정책이 필요하다. 지나친 사적 영역을 줄이고 공적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거의 모든 권한과 자금을 독점하고 있는 정부가 어설픈 형태의 사회적 조직을 지원하며, 알아서 경쟁하고 자립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우리 같이 영세 소농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영농체계에서는 경쟁 자체가 불가하다. 농업 총생산량은 국내 총생산량 가운데 2%도 안 된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얼마 안 되는 농업, 그러나 국방만큼이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경쟁과 효율 중심의 정책으로 나간다면 우리나라 농업·농촌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농업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농지는 농민의 것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농지제도의 문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농지제도의 개혁이 없다면 어떤 농정개혁도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헌법에도 명기된 경자유전의 원칙을 이제는 바로 세워야 한다. 검찰개혁만큼 노력한다면 안 될 것도 없을 것이다.

둘째, 농산물의 60~70%는 국가와 공공영역에서 소비하고 보장해야 한다. 먹거리 조달체계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누고 공공영역은 학교급식 이외 공공부문, 마을급식까지 먹거리의 공공조달체계로 넓혀야 한다. 공공영역에서 소비하지 않는다면 농업은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WTO 체계 내에서 농산물 가격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식량안보, 식량주권 차원에서 주요 농산물에 대한 가격보장시스템을 우선 도입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예측 불허한데다, 최근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듯 위기 상황에서의 식량은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 개념의 직접지불제 지급이다. 최소한 농가당 매월 50만 원, 개별 농민당 30만 원의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 각종 보조사업, 개발사업, 공모사업을 줄이고 농업 관련 조직들을 줄여나간다면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농정예산의 30~50%는 이러한 비용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다면 우리 농업·농촌에는 희망이 없다. 2020년대의 시작, 농업·농촌·농민의 회생을 위해 다시 ‘천하위공’의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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