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절망과 농사 희망

  • 입력 2020.02.02 18:00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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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우희종 서울대 교수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또다시 예년과 같이 농민들은 농촌을 위해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을 때라고 소박한 희망을 품고, TV나 언론 지상에서 보던 얼굴을 모처럼 보게 된다. 농촌을 위한 현란한 여러 약속도 조만간 농가 곳곳에 제시될 것이고.

그러나 그런 희망에 차고 굳건한 약속은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진 바 없다. 선거철에 등장했던 약속은 늘 그렇듯 실현되지 않고, 다음 선거에서 조금 형태를 달리해 상투적으로 반복되어 유포된다. 이는 대부분의 공약이 실현되지 않고 끝난다는 점에서 총선이건 대선이건, 혹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리 차이 없이 마치 농촌의 정기행사처럼 됐다.

이제 선거철에 그렇게 희망찬 약속을 한 정치인들이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손쉽게 정치인들이란 원래 그렇다든지 아니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사기꾼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정리할 수 있지만, 이렇게 농업 현안에 대한 약속이 늘 지켜지지 않는 것에 다른 이유는 없는지 의문을 가져 볼 만하다.

“국내 농업엔 백약이 무효”

국내 농업에 희망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일전에 농업에 애정을 남다르게 지니고 있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을 역임했던 분이 국내 농업엔 백약이 무효라는 말로 그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다시 말하면 국내 농업에 있어서는 백 가지 공약도 그리 유효하지 않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나마 농민수당이나 농업직불금이 보다 활성화 되면 도움은 되겠지만.

한편, 이번 설 연휴에 예년과 같이 민족대이동이 있었다. 앞으로 몇 년이나 이어질까라는 우려는 이미 2018년에 평균 출산률이 1 이하를 기록한 상황에서 필연적인 인구절벽에 기인한다. 한국은 고령화사회가 아니라, 산업 활동인구의 감소가 분명한 고령사회로 이미 전환됐다. 한국사회가 65세 이상이 20% 이상 되는 초고령사회 역시 5년 후인 2025년으로 예상되고 있다. 농촌이 초고령사회가 된 지는 이미 오래 아닌가.

곧 맞이하게 될 초고령사회에서 생산 가능 농업인구의 연령분포는 물론 인구절벽 시대에 농업인구 숫자의 격감은 이제 불 보듯이 분명하다. 더욱이 귀농을 한 이들이 현지에서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존 농민들로부터 밖에서 온 사람으로 대우받는 문화에서 농업 인구는 정부나 지자체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유입보다는 자연감소로 마무리될 것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텅 빈 농촌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종 FTA의 유예기간마저 지나면서 값싼 해외 농축산물이 지금보다 더욱 널리 유통될 것이다. 상기한 전 전농 의장도 논밭에 나가 일하려 할 때 듣는 것은 마트에 가면 싸게 사는데 굳이 무엇 하러 힘들게 일하느냐는 핀잔뿐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세계화 흐름 속에 농업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가까운 미래에 예상되는 국제 식량 전쟁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준비나 대책은 당장 값싼 먹거리가 수입되는 상황에서 국민이나 정부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고, 이미 초고령화 상태인 농촌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 외에는 더 이상 농업 지대도 아니다. 많은 농민들은 농사보다는 차라리 농지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다양한 국가 개발 사업이 진행돼 토지 보상으로 땅값 급등을 바라고 있다. 도시 주변 농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외지인 소유에 불과하고 농업은 흉내만이다.

이런 국내 상황에서 각종 현란한 공약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부도를 내는 국회의원들도, 혹은 농업계를 대표한다는 각종 지자체 위원회는 물론, 작년에 설치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을 위원으로 하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도 국내 농업에 있어서 구체적 해결책을 쉽게 제시하지 못하기에 결국 국내 농업엔 백약이 무효하다는 언급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남북 농업교류 성사는 국내 농업 기반을 유지하기위한 충분한 명분이 된다. 지난해 5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내포리에 위치한 ‘통일쌀 경작지’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소속 농민들과 (사)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및 인하대 학생 50여명이 ‘쌀을 나누면 평화가 옵니다’라는 주제로 손 모내기에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남북 농업교류 성사는 국내 농업 기반을 유지하기위한 충분한 명분이 된다. 지난해 5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내포리에 위치한 ‘통일쌀 경작지’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소속 농민들과 (사)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및 인하대 학생 50여명이 ‘쌀을 나누면 평화가 옵니다’라는 주제로 손 모내기에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남북 농업교류 성사에 적극 나서야

이 상황에서 냉정히 출구를 생각해 본다면 비록 미련 속에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은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로 근본적 해결은 되지 못할지언정 농업을 유지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상황으로서 명분이 분명한 남북 교류를 들 수 있다.

비록 경색된 3중의 국제제재 탓에 진행되기 어렵고, 또한 국내에서도 진영논리에 의해 남북 교류가 폄훼되고 있지만, 만성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2,500만 북한 주민과 함께 할 때 국내 농축산업은 또 다른 측면을 맞이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값싼 해외 농산물은 염두에 둬야 하지만 남측의 쌀농사나 축산 환경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국제제재 해제를 위한 외교 활동에 나서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미국과 많은 협상을 해 왔지만, 한국에 유리한 협상을 한국 먼저 미국에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남북 농업 협력을 위한 국제제재 해제 요청에 정부가 보다 능동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강한 요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2008년 식품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미국 소고기 개방에 대해 온 국민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 타결된 협상 내용을 한시적으로 국제기준에 맞게 바꿨지만, 한국으로부터의 ‘재협상’ 선례를 미국이 거부했기 때문에 양국은 공식적으로 ‘재논의’라는 형식으로 합의, 해결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록 여전히 부도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산하의 남북농수산협력분과위원회를 통해서 남과 북의 농축산 협력 추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줘야 하고, 아니면 그런 행보를 후보자들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 이미 남북 농축산 협력에 대한 여러 사전 연구는 되어 있는 편이기에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데에 국제 정세 변화 외에는 그리 큰 어려움이 예상되지는 않는다.

도시민 정착 위한 농촌 환경 전환

두 번째 접근은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백약이 무효한 국내 농업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포기하되, 농사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농촌에서 자란 이는 도시에서 성장한 이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농촌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부정적이다. 이는 농촌에서 몸으로 겪은 농사 경험의 고달픔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서울 외에는 모두 지방으로 여겨지면서 수도권에 편향된 제반 편의 내지 문화 시설 부족과 함께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적은 농업 지역으로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기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격변하는 경제 성장기에 대도시에 태어나 고향이 없는 이들은 언제나 농촌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지닌다. 더욱이 현재 국내 인구 태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어 그나마 향후 태어난 이들이 성장하는 환경이란 전형적인 도시 문화다. 생태적 관심과 가치가 요구되는 시대다. 생태적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도시 세대를 중심으로 현재의 농촌과 도시인들 간의 관계 설정이 새삼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에겐 지금은 노래가 되어 널리 알려진 ‘향수’라는 정지용 시에 등장하듯, 서정적이고 그리움을 지닌 곳이 농촌이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자,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는 곳’이라는 환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도시인들이 농업에 종사할 능력은 없기에, 그동안 현지 농민들에겐 외지인들이란 농업을 장난으로 아는 타자에 불과했기에 귀농에 실패하고 되돌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꾸준히 진행되는 다양한 개발로 인해 가용할 농지는 좁아지고, 인구절벽 상황과 함께 후속세대가 채워지지 않는 농촌에서 조만간 사라져 갈 마지막 농민을 떠나보낼 때, 농촌은 현재 모습으로부터 새로운 형태로, 생태적 시각을 지닌 외지인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런 입장의 도시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어차피 앞으로 남을 농지는 점차 줄어든다. 제안한다면 출구가 없는 ‘농업으로서의 농사’가 아닌 개인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분의 삶으로서의 농사’로의 완전한 농촌 환경의 전환을 통해 외지인이 확실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자체나 국가 차원의 적극적 유도에 나서는 것이다.

좋건 싫건 백약이 무효한 농업이라는 산업이 사라진, 주인 없는 빈 땅을 어찌 할 것인가가 앞으로 직면해야 할 농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식량자원 확보라는 관점에서 국가적으로 농업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이런 제안은 아무리 현재 초고령화 상태의 농촌이라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할 생각이다. 또 백약이 무효한 상황에서 제시되는 관점이기에 조악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향한 대책이란 주어진 현재 상황과 흐름을 인정하고 그에 기반해 출발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아쉽게도 개인의 선호나 가치와도 다르게 변하고 있고, 이미 백약이 무효한 국내 농업은 그동안 너무도 열심히 힘들게 자리를 지켜왔다. 슬프기는 하지만 변화하는 현실 속에 생각을 바꾸는 것이 총선 공약에 일희일비하며 오지 않을 ‘고도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좋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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