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파사⑤ 안테나가 태업을 일삼았다

  • 입력 2020.02.0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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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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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반에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이 생겼다가 이후 수지를 맞추지 못해 문을 닫았고, 1957년 9월에는 주한미군방송(AFKN)이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텔레비전 시대가 열린 것은 1961년 12월 31일에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인 KBS TV가 탄생하면서부터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종(種)의 상전이 쳐들어와서 안방을 점령했으니(물론 초기에는 형편이 여유로운 집에서만 장만할 수 있었던 사치품이었지만), 당연히 새로 등장한 그 안주인의 질병을 치료해 줄 의사도 필요했다. 텔레비전을 가설하고 고장을 수리하는 기술자가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신문‧잡지의 하단에 ‘TV학원’을 홍보하는 광고가 즐비했다.

그에 발맞춰서 고장 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수리해주는 가게들이 ‘OO전파사’라는 간판을 달고 속속 문을 열었다.

1968년의 어느 여름날, 한 청년이 인천의 변두리 고물상 맞은편의 공터에다 뚝딱뚝딱 말뚝을 박더니, 알루미늄 새시를 얼기설기 덧대어서 무허가 천막을 세웠다. 그러고는 널빤지에다 매직으로 ‘복음전파사’라고 대충 써서 간판으로 달았다. 충청도 부여 청년 이해중이 전파사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해중 역시 TV학원 수료생이었다. 당시엔 무슨 기능사 자격증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쥔장 계신가?

첫 손님이 왔다.

-내가 저쪽 시장 들머리에 건물을 하나 지었는데, 자네가 텔레비전 안테나를 좀 세워줄 수 있겠나?

-그럼요. 사장님이 저희 전파사 개업하고 처음 찾아오신 마수걸이 손님입니다. 건물 옥상에다 공청용 안테나를 세우면 되겠군요. 좋습니다!

“첫 손님이 5층짜리 건물의 건축주였어요. 개별 안테나와는 달리, 건물 옥상에다 하나만 세우면 건물 내의 모든 텔레비전이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것이 공청용(共聽用) 안테나인데, 일반 안테나보다 훨씬 크지요. 개업하고 나서 첫 일감이라 정성을 기울여서 일단 설치를 마쳤지요. 그런데 건물주가 쫓아올라왔어요. 위층 아래층 돌아다니며 아무리 켜 봐도 텔레비전이 통 안 나온다는 거예요. 아, 내 실력으로는 안 되는구나, 생각하고 청계천으로 달려가서 그 방면의 베테랑 기술자를 모셔 왔는데….”

하지만 초빙해온 그 기술자가 점검을 해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씨름한 끝에 이해중이 드디어 원인을 찾아냈다는데, 애당초 건물을 지은 사람들이 안테나선의 배선을 엉터리로 했기 때문이었다.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변두리 전파사에 의뢰 들어온 일거리의 3분의1은 안테나 설치나 혹은 안테나 고장수리였어요. 요즘 같은 유선방송 체제가 아니었고, 또한 난시청 지역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텔레비전 화면이 문제를 일으키는 주원인이 대부분 안테나 때문이었거든요. 바꿔 말하면 70년대 내내 전파사를 먹여 살린 것이 바로 TV 안테나였어요.”

텔레비전 주 시청 시간인 저녁 무렵이 되면 창문 밖이나 옥상이나 장독대 위로 올라간 사람은 안테나를 쳐다보며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느라 고개가 아프고, 방안에서는 연속극 다 지나간다고 아우성을 치고…. 큰바람이 한 번 불고 지나간 다음 날엔, 헝클어진 안테나를 바로 세우려고 올라온 사람들로 연립주택이나 아파트 옥상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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