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회비 대납이 조합원 복지?

물음표 붙은 대구 하빈농협의 적십자회비 대납 … 관례적 대납이 조합원 복지로 둔갑

  • 입력 2020.02.02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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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대구의 한 지역농협에서 조합원 이익 환원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이 내야 할 성금을 대신 납부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달 15일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하빈농협은 하빈면 주민 이름으로 적십자 회비 338만1,000원을 하빈면사무소에 대납했다. 이 같은 대납은 올해만이 아니라 지난 2007년부터 올해까지 14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하빈면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하빈농협이 대납한 적십자회비는 달성군이 정한 목표액에서 현재 3,800명 정도인 하빈면 인구수에 따라 하빈면에 할당한 액수다. 하빈농협의 대납이 이뤄진 건 하빈면사무소에서 보낸 적십자회비 납부 협조 요청 공문에 하빈농협이 화답한 데 따른 것이다. 하빈면은 이를 통해 100% 목표치를 채웠다.

이해성 하빈농협 조합장은 “하빈면에 조합원도 있고 몇 배나 많은 준조합원, 또 농협을 이용하는 고객인 주민들도 있다. 조합원 복지와 함께 이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대납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십자회비는 강제성을 띤 세금이 아니라 자율적 의사에 따라 참여하는 성금이다. 대한적십자사에서도 세금이 아닌 성금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굳이 하빈농협이 주민들 이름으로 대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적십자회비 대납은 조합원 복지와도 무관하다. 더군다나 자발적 성금에 불필요한 행정력이 동원되는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해 대납이 반복된 건 관례처럼 이뤄져오던 행위여서다. 이 조합장과 하빈면사무소 관계자 모두 이를 인정했다. 이 조합장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좋은 일에 쓰일 거라는 생각에 관례적으로 이뤄져오던 일”이라며 “조합장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총회에서 의결한 사업계획에 따라 집행한 사업이다. 여론을 수렴해 신중하게 생각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빈면사무소 관계자도 “자발적으로 하는 게 맞는데 관례적으로 해오던 상황”이라며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일반모금 형식으로 주민들에게 홍보를 하는 방식으로 바꿔보겠다”고 말했다.

적십자회비는 매년 세금고지서와 비슷한 지로용지를 사용하는 모금방식부터 대한적십자사 비리 논란까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농촌에선 지자체들이 이장들에게 업무를 떠맡긴 채 무언의 압박을 가해 사비까지 들여 납부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농협의 입장에선 관례라는 이름으로 적십자회비 대납에 나설게 아니라 구체적인 조합원 복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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