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만 농산물은 아니잖아요

  • 입력 2020.01.19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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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먹지 않는 우리 농산물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목화다. 목화를 재배해 솜을 모아 이불을 만드는 건 우리 전통문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 14일 경북 의성군 의성전통시장 내 솜틀집에서 양영섭(86)씨가 농민이 가져 온 목화에서 씨를 발라내고(맨 위), 씨를 발라낸 솜을 타면기에 넣어 모양을 잡고 있다(가운데). 마지막으로 양씨가 직접 제작한 틀 위에 네모반듯하게 모양이 잡힌 솜을 펼치고 있다.한승호 기자
먹지 않는 우리 농산물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목화다. 목화를 재배해 솜을 모아 이불을 만드는 건 우리 전통문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 14일 경북 의성군 의성전통시장 내 솜틀집에서 양영섭(86)씨가 농민이 가져 온 목화에서 씨를 발라내고(맨 위), 씨를 발라낸 솜을 타면기에 넣어 모양을 잡고 있다(가운데). 마지막으로 양씨가 직접 제작한 틀 위에 네모반듯하게 모양이 잡힌 솜을 펼치고 있다.한승호 기자

농업은 1차산업이다. 흙바닥에서 작물을 키워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인 농업을 기반으로 우리는 생활을 꾸리고 문화를 향유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식생활과 식문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농업을 통해 식량주권과 국민 먹거리 안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먹거리가 농업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먹거리지만, 농업 생산물은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된다. 식용 작물의 부산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애초에 식용 이외의 목적으로 작물을 재배하기도 한다.

현대인에게 ‘식용 이외의 농산물’이라고 했을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꽃이다. 화훼류나 다육식물은 우리 생활에서 아주 흔하게, 쉽게 접할 수 있는 관상용 작물이다. 최근엔 꽃처럼 예쁜 고추와 토마토 등 관상용 채소 종자가 보급돼 분화 시장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관상목이나 잔디는 더욱 큰 단위에서 조경의 재료가 된다.

애연가들은 꽃보다 먼저 담배를 떠올렸을 것이다. 몸에는 이롭지 않지만 보편적인 기호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하얗게 돌돌 말린 궐련 담배도 ‘담배’라는 작물의 잎을 가공해 만든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노인들이라면 각종 작물의 추출물로 만든 약품을,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들이라면 개다래나무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생각을 약간 옛스러운 쪽으로 틀어 보면 더욱 다양한 작물들이 보인다. 당장 벼만 해도 탈곡 후 볏짚으로 꼰 새끼는 과거에 모자와 신발, 지붕과 밧줄, 각종 도구의 부품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생필품이었다.

뿐만 아니다. 모시·삼베와 누에는 옷감을 만들고 치자와 쪽은 그 옷감을 물들인다. 속을 박박 파먹은 박은 바가지로 사용하고 수세미는 말 그대로 천연 수세미가 된다. 오늘날 비록 많은 부분이 합성소재로 대체됐다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매력, 대체 불가한 기능성에 인기가 건재하며, 더러 예술가들의 공예 재료로 각광받기도 하는 작물들이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순전히 재미를 위해 농산물을 사용하고 그것이 문화로 자리잡은 경우도 있다. 할로윈데이에 호박을 유령 모양으로 조각해 만드는 북미의 ‘잭 오 랜턴’은 이미 세계적으로 친숙해진 아이템이다. 스페인 부뇰 지역에선 1940년대부터 매년 여름 정신없이 토마토를 던지고 노는 ‘라 토마티나’ 축제를 이어 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화천군이 2000년대부터 유사한 축제를 시작했다. 미국의 한 젊은 사업가는 감자에 편지를 써서 발송해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월 2,000만원 매출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非)식용 농산물이 농업의 주류가 될 순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다. 아무리 수입 먹거리가 밀려들어오고 설 자리를 뺏긴다 한들 비식용 농산물이 대다수 농민들의 탈출구가 될 순 없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농민들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식량주권이다.

하지만 비식용 농산물은 우리 농업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요소이자 우리의 생활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소재다. 때론 새로운 문화나 예술을 창출해낼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많은 농민들이 재배하기엔 애당초 한계가 있지만 누군가는 재배해야 하는 작물, 이른바 ‘먹지 않는 농산물’ 몇 가지를 지면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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