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함을 피우는 꽃, 목화

  • 입력 2020.01.19 18:00
  • 수정 2020.01.19 21:3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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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14일 경북 의성군 의성전통시장에서 솜틀집을 운영하는 양영섭(86)씨가 조면기에 목화를 넣어 씨를 발라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4일 경북 의성군 의성전통시장에서 솜틀집을 운영하는 양영섭(86)씨가 조면기에 목화를 넣어 씨를 발라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북 의성의 전통시장에는 대를 이어 100년을 영업하고 있는 솜틀집이 있다. 농민들이 수확한 목화를 가져오면, 100살 먹은 일제 기계가 ‘타르르르…’ 돌아가기 시작한다. 목화에서 씨를 발라내고 솜을 모으는 것이 조면기, 솜을 고르게 뭉쳐 모양을 잡는 것이 타면기다. 솜틀집 주인 양영섭씨가 조면기로 ‘목화를 안고’ 타면기로 ‘면을 타자’, 포슬포슬하게 각 잡힌 이불솜이 완성된다. 모든 게 신통방통한 광경이다.

솜틀집이 100년을 꾸준히 영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에 드물잖게 목화를 심는 농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경쟁이나 확장 없이 100년을 한 기계로만 영업해온 건 목화 재배가 썩 활성화되진 않았다는 뜻이다.

의성은 국내 목화 재배의 성지다. 고려 말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들여온 뒤, 손자가 현령으로 있던 의성의 지세가 중국 목화 재배지와 흡사해 이곳에 널리 파종하게 됐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수입산 목화와 합성 솜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이 지역 목화 재배는 겨우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다.

일반적인 농산물에 식문화가 얽혀있는 것처럼 목화에도 문화가 있다. 이불을 누비고 옷을 누벼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던 선조들의 삶의 방식이 녹아있고, 시집가는 딸에게 목화솜이불 한 필을 지어 보내던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있다. 고령의 농민들 중엔 아직도 딸을 위해 목화를 심는 이들이 있다.

목화솜은 비록 다른 솜에 비해 무겁긴 하지만 따뜻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소재다. 농민들이 소량씩 마음을 담아 기른 우리 목화솜은 농약이나 표백제 걱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또한 100% 천연성분으로, 목화솜이불을 덮으면서 아토피를 치유한 아이가 이불을 바꾸 재발한 사례도 있다. 4월에 심어 가을부터 겨울까지 알뜰하게 솜을 딸 수 있는 경제성도 주목할 만하다.

목포 등 일부 지역에서 목화 재배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은 보편성이 떨어지는 작목인 게 사실이다. 다만 의성 지역에선 최근 의성군여성농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토종종자 지키기 관점에서 목화 재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의성 농민 권귀자씨는 “요즘엔 색을 넣어 목화 꽃다발도 많이 하고, 여자들 코트도 만들고, 카펫 안감으로 넣는 것도 좋아 보이더라. 토종씨앗도 지키면서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 작년엔 목화를 한 고랑 정도 심었는데 올해부턴 좀 많이 늘려보려 한다”며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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