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회장 선거 이대로 괜찮나?

간선제·깜깜이 선거 한계 속 혼탁양상 … 중선관위 뒷짐에 위탁선거법 위반 되풀이 우려

  • 입력 2020.01.19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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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농협중앙회는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 본관에서 농협중앙회 및 계열사 임직원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출 공명선거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농협중앙회 제공
농협중앙회는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 본관에서 농협중앙회 및 계열사 임직원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출 공명선거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농협중앙회 제공

오는 31일 치러지는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출 선거에 농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농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농협의 새로운 수장이 결정되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엔 역대 선거 중 가장 많은 수의 후보자가 출마했다. 현재까지 예비후보자만 13명이다. 4~6명의 후보가 나왔던 이전 선거들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전국 1,118명의 조합장 중 대의원 조합장인 293명(회장 포함)만의 투표로 선출하는 간선제로 치러지는데다 선거운동도 막혀 있어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이 거센 와중에 후보자들까지 넘치니 현장에선 도무지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옥석을 가릴 재간도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관위)는 누리집에 농협 회장 선거가 위탁선거라는 이유에서 후보자의 간략한 이력이 담긴 공지글만 띄워놓은 상태다. 후보자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찾을 수 없다. 중선관위가 관장하는 공직선거의 경우 모든 후보자의 얼굴과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한 점과는 대비된다. 중선관위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법적 근거가 없어 후보자들로부터 사진을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농협중앙회 누리집에 선거운동 게시판이 있어 각 후보자들이 자신의 포부나 정책이 담긴 선거운동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일률적이지 않고 제각각이라 기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그나마 예비후보자 제도가 도입되며 전화·문자메시지·인터넷·명함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가능해졌다.

일부 선거운동이 개선됐지만 간선제와 깜깜이 선거라는 한계가 여전하다보니 후보자들의 구태의연한 선거운동도 재현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무렵, 선거 국면에 접어들며 재경전북농업향우회 일동이라는 명의로 괴문서가 전남·북 조합장들에게 유포됐다. 괴문서는 전북지역 출마자의 당선 가능성을 내비치며 나머지 후보들의 출마 자격을 문제 삼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지역선관위가 일부 지역농협을 방문에 괴문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선관위에선 이와 관련된 내용을 모른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금품·향응 제공이나 당선을 전제로 한 거래다. 출마자들 사이에서 전국을 몇 바퀴 돌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대의원 조합장들을 상대로 당선을 전제로 한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선 금품·향응 제공의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번 선거 출마자들을 직접 만나 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출마자가 기자를 상대로 기름값 등의 명목으로 봉투를 전하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후보자들을 향한 전·현직 임직원들의 줄서기도 문제다. 당선 이후 진급이나 자리를 보장받기 위한 포석이다. 농협중앙회가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잇달아 공명선거 결의대회를 여는 것도 그래서다. 농협중앙회는 일련의 대회에서 임직원의 부당한 선거개입 불법선거운동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며 적발 시 일벌백계와 고발 및 수사의뢰 방침을 천명했다.

또한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들의 경우엔 2강, 3강, 4강 등 유력후보를 거론하는 보도를 문제로 지적한다. 가뜩이나 얼굴을 알릴 기회도 없는데 언론이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유력후보로 지칭하며 여론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일부 출마자가 사적인 친분으로 지역언론을 포섭해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중선관위에선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고소·고발을 하거나 수사를 의뢰한 사례는 없다”며 “선거 이후 제기된 사안을 검토해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협 회장 선거가 전국동시조합장선거 만큼이나 파급력이 큰 선거지만 위탁선거라는 미명 아래 뒷짐을 진 채 불구경을 하는 모양새다.

농협 회장 선거가 막판으로 접어들며 혼탁양상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4년간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발목이 묶여 활동에 제약을 겪었던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다.

한편, 지난 16~17일 본 후보 등록 결과 예비후보자 13명 중 10명이 등록했고,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추첨으로 기호를 결정했다. 후보자들은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강호동 경남 합천 율곡농협 조합장 △천호진 전 농협 북대구공판장 사장 △임명택 전 농협은행 언주로(현 선정릉)지점장 △문병완 전남 보성농협 조합장 △김병국 전 충북 서충주농협 조합장 △유남영 전북 정읍농협 조합장 △여원구 경기 양평 양서농협 조합장 △이주선 충남 아산 송악농협 조합장 △최덕규 전 경남 합천 가야농협 조합장(기호 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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