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무도 관심 없었던, ‘기울어진 운동장’

  • 입력 2020.01.17 20: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대구의 활주로를 농촌으로 옮기는 문제로 의성군과 군위군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전후보지를 주민투표 결과로 결정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양 지역이 투표율과 찬성률에서 상대를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결과를 불렀고, 온갖 깨끗지 못한 행태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판국이다

합법·불법의 여부를 떠나, 일개 지자체가 어디서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인 600억원의 포상 계획은 국민 누구도 곱게 봐 줄 리 없는, 최소 도의적으로는 부정한 세출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드러나기 전부터 이미 의성과 군위 두 지자체는 1년 이상 직접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운영에만 각각 10억씩 들인 공항유치 전담부서들이 한 일은 관내 전역에서 유치결의대회를 열고, 공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해 현수막과 입간판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공무원들이 직접 주민들과 접촉하며 갖은 설득과 회유를 시도했다는 증언은 이미 셀 수 없이 쌓여있다. 대표 자신은 물론이고 부하 직원들까지 몰래 위장 전입을 시키려던 회사가 선거관리 당국에 의해 적발된 사건은 합리적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정말,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려고 했을까?”

지자체가 찬성 측 인원들에게 세금을 써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동안, 공항을 원하지 않는 농민들은 자신의 트럭을 바쳐 단 두 대의 선전 차량을 만들었다. 누가 뭐래도 포기하지 않고 간신히 끊어질 듯 말 듯 한 힘겨운 싸움을 3년 동안 이어왔지만, 허술한 주민투표법 때문에 반대 측을 대표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분명 주민투표는 선택지를 찬성과 반대로 놓고 주민의 의사를 묻는 투표다. 그러나 반대 측 주민들은 찬성 측 주민이 아닌 지자체라는 거인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운동장은 명백히 기울어져 있었으나 지역에서는 어떤 자성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비한 주민투표법을 고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예산과 권력을 쥔 지자체의 개입을 막을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할 바엔, 이런 거대한 결정을 허술한 주민투표에 맡겨 갈등을 초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