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야 할 것
[농민칼럼]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야 할 것
  • 권혁주(충남 부여)
  • 승인 2020.01.12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혁주(충남 부여)
권혁주(충남 부여)

「농업·농민·농촌이 어렵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농업이 축소되고 쇠락의 길에 접어들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농업인구의 급감, 농촌사회의 공동화는 ‘원래 그런’ 안타까운 현실로 치부되고 있다. 먹을 것이 풍족한 지금 세계적 식량위기니 애그플레이션이니 하는 문제는 먼 나라 아프리카 빈국의 기아문제 정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기저에는 농업의 희생을 토대로 구축한 산업화가 오늘날의 풍요를 가져왔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성장을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농업의 피해, 농민의 희생, 농촌의 붕괴를 당연시 하고 있다. (중략)

많은 학자들과 농민들은 농업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개방과 대외의존을 전제로 한 농업정책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식량의 안정적 생산과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을 위한 농정으로의 일대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농업을 산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 농정은 지난 30년간 실패했음이 확인됐다.」

위 내용은 7~8년 전에 썼던 글 중의 일부이다. 그때나 2020년 새해를 맞이한 지금이나 우리 농업·농촌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해가 지났는데도 별 생각없이 나이만 먹는 내 모습마냥 한국사회에서 농업이 수십년째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린 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19년, 농업은 작년에도 여전했다.

애초부터 목표가 없었던 쌀 목표가격, 변동직불제 폐지와 휴경명령제로 대표되는 직불제 개편, 어느 날 느닷없이 한국농업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세운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널뛰기의 폭과 범위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 무릎팍도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다는 농산물 값, 언론조차 관심 없는 고만고만한 농업예산.

물론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좋아진 것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던데 농업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과 무대책은 변하지 않았다.

해마다 추수 끝마치고 연례행사처럼 치렀던 전국농민대회는 집회 제목만 조금 달라졌을 뿐 본질은 그대로였다. 수입개방의 역사는 역대 정부를 가리지 않고 브레이크 없이 폭주했고, 선거철에만 국민이었던 농민들은 거짓과 오욕의 정치에 매번 분노했다. 복지부동 관료들은 농업보조금으로 농민들을 줄세웠다. TV만 켜면 이미 먹방, 쿡방, 친환경이 대세가 됐지만 정작 농업과 농민은 무색무취 투명하게 변해버렸다.

2020년, 해가 바뀌면 나이 한 살 더 먹고 조금이나마 철이라는 것이 들듯이 농업에 대한 관점과 태도도 변했으면 한다. 모름지기 사람이 이유없이 갑자기 변하면 본인도 그렇거니와 주변에서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농업에 대한 그것들이 느닷없이 변했으면 한다. 농업의제가 언론 메인기사가 되고 댓글풍년, 농사풍년이 되기를 바란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른바 촛불정부라 자처하는 그들이 내세운 구호였다. 농민들도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누려야 할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언제는 수출의 시대라고, 언제는 개방화 시대라고, 언제는 세계화 시대라고,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며 농업·농민·농촌이 변해야 살 수 있다는 말은 말이 아니라 그냥 폭력일 뿐이다. 지켜야 할 것,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야 할 것을 정확히 구분하고 실행해야 한다. 해도 바뀌었으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