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리 먹거리, '임원경제지' 정조지에서 찾다
잃어버린 우리 먹거리, '임원경제지' 정조지에서 찾다
  • 강선일 기자
  • 승인 2020.01.1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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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중 전통먹거리 다룬 ‘정조지’ 올해 상반기 출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임원경제지의 저자 풍석 서유구 선생. 임원경제연구소 제공
임원경제지의 저자 풍석 서유구 선생. 임원경제연구소 제공

농업과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이 지속가능성의 조건 중엔 과거의 문화 중 오늘 필요한 것을 잘 되살리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 면에서 조선후기의 실학자 풍석 서유구(1764~1845) 선생이 쓴 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원경제연구소(소장 정명현)의 오랜 번역 작업 끝에 임원경제지 ‘정조지(鼎俎志)’가 올해 상반기 출간될 예정이다.

임원경제지는 서유구 선생이 36년(1806~1842년)에 걸쳐 저술한 책이다. 내용이 16지(志)로 나뉘어 있어 ‘임원십육지’라고도 부른다. 이번에 번역된 정조지는 임원경제지 제8지로, 조선시대 먹거리 관련 내용을 총망라한 ‘전통먹거리 백과사전’이다. 사실 정조지를 번역한 책이 처음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임원경제연구소가 번역한 정조지는 현재 남아있는 모든 판본을 교감(矯監), 그러니까 교차검토하며 번역했다는 측면에서 기존 번역본과 다르다.

현재 서유구 선생의 손때가 묻은 임원경제지 원본은 일본에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인 사업가가 원본을 구입해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부립도서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강탈당한 셈이다. 올해 출간될 완역본은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해당 원본까지 참고하며 번역한 내용이기에, 사실상 완전판이라 할 수 있다. 연구원들은 일본에서 해당 원본을 복사해 갖고 온 뒤, 국내에 남아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판본들과 교감작업을 거쳐 정조지 번역을 완료했다.

임원경제지 정조지 번역작업을 진행했던 정정기 임원경제연구소 번역팀장이 지난 3일 경기도 파주시 임원경제연구소에서 정조지 원본(일본 오사카 소재) 복사본을 펼쳐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임원경제지 정조지 번역작업을 진행했던 정정기 임원경제연구소 번역팀장이 지난 3일 경기도 파주시 임원경제연구소에서 정조지 원본(일본 오사카 소재) 복사본을 펼쳐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정조지엔 전통먹거리들의 식재료 및 각종 요리법, 술과 절기 음식에 대한 내용들이 담겼다. 그중엔 지금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먹거리도 많다는 게 정정기 임원경제연구소 번역팀장의 설명이다. 정 팀장은 “정조지 내엔 165가지 전통주 제조법이 나오는데, 그중 오늘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거나 고급술 향유층들이 즐길 수 있는 걸 다 세어도 5가지 정도 밖에 안 된다.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전통주 제조법마저 현실에서 없애버렸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술 자가제조를 금지했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양조장을 세워 자국 술을 팔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상들이 자가제조하던 술은 토종쌀로 만든 술들이었다. 일제는 토종벼들마저 일본 벼로 갈아치워버렸다.

우리 스스로도 옛것을 지키는 데 소홀했다. 정 팀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음식, 의복 등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학교에 있었으나, 그들이 은퇴하면서 지금은 전통문화 연구가 위축됐다”며 “지금 우리는 160가지의 옛날 술들을 잃어버린 셈이다. 하루빨리 이를 현실 속에서 복원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말로만 ‘옛 제조법의 복원’을 주장한 게 아니다. 정 팀장은 정조지에 기록된 방식으로 옛 부의주(浮蟻酒), 즉 동동주 제조법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2011년부터 정 팀장은 제자들과 함께 부의주를 정조지에 기록된 대로 만들며 ‘부의주 전문가’로 거듭났다.

부의주에 솔잎·뽕잎을 넣어 달일 수도, 오디를 넣어 상심주라는 술을 만들 수도 있다. 부의주 제조법을 기반삼아 온갖 다양한 술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전통 죽도 비슷한데, 정조지에 기록된 갱미죽 제조법을 기반으로 황정죽·마죽·방풍죽 등 새로운 죽을 만들 수 있다. 부의주와 갱미죽엔 토종쌀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 수많은 제조법은 우리 전통먹거리 뿐 아니라 농업 보전과도 연결된다.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자들은 번역 과정에서 맡은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했다. 정 팀장은 “초벌번역은 3년 만에 가능하나, 구체적 의미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와닿게 하려면 농업, 먹거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우리 또한 전문 지식을 쌓아야 했다. 이 책의 지식을 전문적으로 익히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정조지 번역 과정에서 연구소 사람들은 문성희 들뫼자연음식연구소장, 곽미경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장 등 전통음식 관련 전문가들과 결합해 자문을 구했다. 문 소장과 곽 소장은 정조지 내용을 토대로 각각 <풍석 서유구 선생의 생명밥상>(문성희·정정기 해설, 씨앗을뿌리는사람들), <조선셰프 서유구>(곽미경 저, 씨앗을뿌리는사람들) 등의 해설서를 내기도 했다.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들과 요리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번역 작업 및 전통요리법 보급에 박차를 가했다.

정조지 ‘완전판’은 빠르면 오는 3월, 늦어도 올해 상반기 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정 팀장은 “정조지는 단순한 한식 백과사전이 아니다. 이 안에는 중국과 일본, 서양의 요리 중에서도 조선 실정에 맞게 조선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먹거리는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며 “임원경제지에는 당시 조선과 외국의 문물을 총정리해 더욱 발전된 미래를 만들고자 한 서유구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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