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공익적 기능, 농촌 전통문화

  • 입력 2020.01.12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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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중 하나로 거론되는 농촌의 전통문화를 보존해 오는 데는 무엇보다 농민들의 공로가 컸다. 전북 순창군 풍산면 두지마을 주민들이 풍물을 앞세운 채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중 하나로 거론되는 농촌의 전통문화를 보존해 오는 데는 무엇보다 농민들의 공로가 컸다. 전북 순창군 풍산면 두지마을 주민들이 풍물을 앞세운 채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 농민들은 고대부터 농업과 관련된 춤과 노래를 발전시켜왔다. 전통 춤 중엔 벼농사 과정의 쟁기질, 모내기 등 노동 과정을 형상화한 춤들이 많았다.

벼농사 때 부르는 노동요도 있었다. 마을 사원의 승려는 농민들이 논에 들어갈 때, 쟁기질하는 물소의 이동에 맞춰 “오~ 암마(Amma)!”, “오~ 아포(Appo)!”라 ‘응원가’를 불렀다. 여기서 ‘오~’는 바다의 소리를, ‘암마’와 ‘아포’는 각각 어머니, 아버지를 뜻한다.

마을 사람들은 집을 결코 외떨어져 짓지 않고 대가족마냥 모여서 집을 지었다. 이를 통해 귀중한 땅의 손실을 최소화했고, 마을 사람들끼리 돕고 살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스리랑카 정부는 ‘농촌근대화’ 사업을 벌이며 농촌에서 대규모 농업을 확대시켰다. 농촌근대화 정책은 사실상 대농 중심 농정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 빈민가로 향했다. 수백년 동안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칠 때도 유지됐던 스리랑카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와 문화는 해체됐다. 한 스리랑카 농민은 “이 나라를 열대판 서양식 산업국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자멸하는 길”이라며 “전통농업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째 멀리 떨어진 인도양 섬나라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우리는 어땠나. 개발독재 시기, 군사정권은 새마을운동이란 이름의 농촌근대화 정책을 펼쳤다. “잘 살아보세”란 미명하에 펼쳐진 정책이었지만, 새마을운동은 사실상 대농 중심 농정을 고착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 공장 노동자나 빈민이 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도 유지된 마을공동체는 급속도로 파괴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농촌 전통문화도 대거 사라졌다.

뒤늦게나마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수많은 공익적 기능 중 하나로 농촌의 ‘전통문화 보전’ 기능이 거론된다. 이 ‘전통문화 보전’이란 단순히 마을의 유물, 유적, 또는 풍습을 유지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만 생각한다면 박물관을 잘 만들어 옛날 고려, 조선시대 농기구를 전시하면 그만이며, 학자들이 전통문화를 연구해 책을 쓰면 그만이다.

농촌의 ‘전통문화’는 바로 농민들이 꾸려온 공동체적인 삶, 공동체적인 문화를 의미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 조상신들에게 한 해의 안녕을 빈 뒤 모든 주민들이 모여 잔치를 열었으니, 이를 ‘대동마당’이라 한다. 모두가 하나된 대동마당 속에서 농민들은 공동체로서 단단해졌다. 우리 민족의 문명은 이러한 공동체 문화 속에서 태어났다.

급속한 근대화, 그리고 뒤를 이은 농촌소멸 상황에서 우리 농촌공동체 문화는 점차 사라졌다. 공동체 문화의 소멸은 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하며, 공동체의 소멸은 농촌소멸로 이어진다. 농촌이 소멸된다면 대한민국이 소멸된다는 것, 적어도 지금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부인하지 못 할 테다.

농촌소멸 위기 속에서도 농민들이 농촌의 옛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있는 건 그런 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컨대 풍물패가 연주하는 ‘우리의 소리’가 대중 속에 뿌리내리는 데도 각자의 집에서 꽹과리, 장구, 북을 소중히 지키고, 풍물공연을 보전해 온 농민들의 공로가 컸다. 농촌 전통문화 보전은 농민이 주체이자 농민들이 시작한 일이지만, 이를 농민에게만 맡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국가도, 학자들도 농업의 또 다른 ‘공익적 기능’으로서 농촌 전통의 공동체 문화를 살리는 데 함께해야 한다.

※참고문헌: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요시다 타로 저, 김석기 역.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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