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이력제, 현장에 안 맞아

늘어난 장부·번거로운 수기 작업 … 계산기 검산에 바빠
포장지·난각마다 정보 있는데 이력번호 12개 필요한가

  • 입력 2020.01.12 18:00
  • 수정 2020.01.15 13:5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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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산란계농민들이 계란 이력제 시행을 두고 비현실적인 규제라며 입을 모으고 있다. 계란은 포장과 난각(계란껍데기)에 충분한 정보가 표시되기에 이중규제란 지적이다.

지난 8일 찾은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푸른초원농원에선 계란선별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농장은 수집판매업뿐 아니라 선별포장업 허가도 받았으며 농장·식품 HACCP(해썹)인증과 동물복지인증도 보유하고 있다. 사육규모는 6만수 수준이다.

이 농장은 위탁을 포함해 3곳에서 생산된 계란을 선별해 대형마트 한 곳에 일괄 공급하고 있었다. 이날 처리물량은 약 2만개 수준으로 보통 1~2시간이면 선별부터 출하까지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이력제를 적용한 결과, 작업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처지다. 박성인 푸른초원농원 생산팀장은 “이력제를 적용하니 관리해야 할 장부가 늘어나고 입출고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라며 “실수를 하면 마트로부터 패널티를 받을 수 있어 너무 불안한 상황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력제는 계란을 산란일자와 생산농장별로 구분해 이력번호를 생성하도록 하고 있다. 축평원 이력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이력번호를 생성하면 이력번호대로 실적은 따로 신고해야 한다.

그 다음엔 거래를 신고해야 한다. 이날 이 선별장에서 생성한 이력번호는 5개였다. 발주처는 마트 유통센터 3곳이다. 이 날은 9번 신고내용을 입력했지만 이런 경우엔 최대 15번까지 직접 입력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알 개수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란은 유통현장에서 대부분 박스나 팩 단위로 계산한다. 팩 포장도 10구에서 30구까지 다양하다. 이를 알 개수로 환산해야 하니 현장 곳곳에 계산기를 놓고 계산하기 바쁘다. 틈틈이 검수도 해야 한다.

그 다음엔 계란이 뒤섞이지 않도록 출고팀에 이 정보를 꼼꼼히 전달해야 한다. 마트에서 이력번호를 검수했을 때 틀리면 해당 계란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산란일자가 표시된 이상 계란이 원래 가야 할 마트로 돌아가는데 시일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이 농장은 기존엔 직원 5명이 농장관리부터 선별포장작업까지 맡았지만 이력제를 도입하며 현장에 따로 직원 1명을 추가 고용했다. 여기에 장부를 관리하며 이력제 시스템을 책임질 직원 1명을 더 구하려 하고 있다.

박 팀장은 “산란계 농장은 생산뿐 아니라 유통도 담당하고 있어 이중으로 규제를 받고 있다. 우리 농장만 수집판매업, 선별포장업에 농장·식품 해썹 인증, 동물복지인증까지 관리해야 할 목록이 산더미다. 여기에 이력제까지 겹치니 감당이 안 된다”라며 “이미 계란은 난각에 농장번호와 산란일자까지 찍혀있고 포장지에도 따로 정보가 표시된다. 구태여 온라인에 접속해 이력번호 12자리를 찍는 수고를 할 소비자가 몇이나 있겠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포장지에선 이력번호를 빼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유통단계에서의 이력제 시행에 대해 오는 7월 1일까지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계란의 특성상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없다면 문제점이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김양길 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산란계농장은 보통 3~5개 계군이 있는데 이를 계군별로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계란의 특성을 감안해 정책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물복지 유정란 농가들은 별도로 지난해 12월 19일 축평원을 찾아 이력제 시행과 관련해 간담회를 갖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유정란농민은 “이력제 시행으로 원가는 올라가는데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기는 어렵다. 이대로는 사육을 포기해야 하나 싶다”고 개탄했다.
 

계란 이력제를 적용한 현장은 번거로운 과정이 늘어나 작업효율이 매우 떨어져 있었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선별장에서 여러 장부를 기입하고 대조하는 작업, 이력관리시스템에 정보를 기입하는 작업, 출고팀과 함께 장부들을 살펴보며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이다.
계란 이력제를 적용한 현장은 번거로운 과정이 늘어나 작업효율이 매우 떨어져 있었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선별장에서 여러 장부를 기입하고 대조하는 작업, 이력관리시스템에 정보를 기입하는 작업, 출고팀과 함께 장부들을 살펴보며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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