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양배추, WTO 등에 업고 가락시장 돌파하나
중국산 양배추, WTO 등에 업고 가락시장 돌파하나
  • 권순창 기자
  • 승인 2020.01.1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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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청과에 출하된 수입양배추
경매거부에 수입업자 강력 반발
농민들 “돈에 눈 먼 수입” 비판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2일 중국산 양배추 경매를 거부당한 수입업자가 중국어를 병기한 항의 현수막을 게재하자 농민들이 곧바로 맞불 현수막을 걸었다. 지난 7일 중국산 양배추가 적치된 곳에 나란히 두 개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지난 2일 중국산 양배추 경매를 거부당한 수입업자가 중국어를 병기한 항의 현수막을 게재하자 농민들이 곧바로 맞불 현수막을 걸었다. 지난 7일 중국산 양배추가 적치된 곳에 나란히 두 개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가락시장에 중국산 양배추를 출하한 수입업자가 경매를 거부당하자 양배추를 적치한 채 반발하고 있다. ‘WTO 위반’까지 거론되는 강도 높은 반발이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수입업자들의 행태가 이기적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가락시장 수입양배추 문제는 지난해 11월부터 불거졌다. 중앙청과·동화청과 등 양배추·무 경매를 거의 하지 않는 도매법인에서 정가·수의매매 부정운영 등의 방식으로 수입양배추·무 출하가 이뤄졌고 이 중 일부가 국내 출하자들에게 적발돼 거래가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출하는 앞선 사례와는 달리 양배추·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대아청과(대표이사 박재욱)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수입양배추 유통을 정면으로 뚫어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해당 수입업자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대아청과에 수입양배추 출하를 타진했다. 그러나 다른 어느 도매법인보다 국내 양배추 농가와의 관계 유지가 중요하고 불과 지난해 가을까지의 폭락상황을 지척에서 목도한 대아청과로선 수입양배추 수탁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말 두 차례 출하를 실패한 수입업자는 지난 2일 다시 가락시장에 들어와 대아청과 측의 만류에도 불구, 수입양배추 8팰릿(15kg 480박스)분을 직접 경매장에 하역했다. 대아청과가 끝내 경매를 거부하자 가락시장 관리자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김경호, 공사)에 신고를 접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산 양배추 수탁 거부가 ‘WTO 규정 위반’이라며 주한중국대사관 접촉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양배추는 아직도 그대로 적치돼 있으며 전면에 ‘WTO 위반’ 주장을 중국어로 병기한 현수막이 붙어있다.

지난 2일 경매를 거부당하고 대아청과 경매장에 방치돼 있는 중국산 양배추. 출하 당시부터 품질은 많이 떨어지는 상태였다.
지난 2일 경매를 거부당하고 대아청과 경매장에 방치돼 있는 중국산 양배추. 출하 당시부터 품질은 많이 떨어지는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대아청과의 수입양배추 수탁거부는 WTO 위반이 아닌 농안법 위반이다. 농안법은 국내 영세출하자 보호를 위해 도매법인이 농산물 수탁과 경매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놨는데 수입농산물이 이 규정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거부해선 안되는 수입 수탁을 거부했으니 법 위반은 분명하다.

WTO 위반은 공사가 농안법을 위반한 대아청과에 처벌을 집행하지 않거나, 정부나 국회가 농안법 개정으로 국산-수입산 유통에 차별을 두려 할 때 적용된다. 즉 대아청과의 경매 거부는 단순히 법적 처벌을 받지만 공사의 처벌 미집행은 한-중 무역분쟁으로 번질 소지가 있다.

국산농산물 보호 의지는 대아청과와 공사, 정부와 국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바다. 하지만 대아청과의 대승적인 수입농산물 경매 거부에 공사는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고, 정부와 국회도 한바탕 외교전을 벌일 의지가 없는 한 이를 모른척 할 수밖에 없다. 부담은 대아청과라는 일개 기업에만 돌아간다. 정부의 뿌리깊은 시장개방 정책이 초래한 비극이다.

대아청과라고 언제까지나 경매를 거부할 순 없다. 1회 거부 시 과징금은 수백만원대지만 2회부턴 수천만원대로 훌쩍 늘어난다. 수입업자가 계속 문을 두드리면 열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업계에 마지막 남은 저항장치는 수입업자들에 대한 도의적 비난이다. 수입양배추가 공영도매시장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된 건 업자들의 무분별한 수입이 원인이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태풍·장마에 국내 양배추 작황이 무너지자 기존 양배추 수입업자 외에 여러 수입업자들이 중국산 양배추를 대량 수집해 들여왔고, 막상 안 팔아본 양배추를 팔려니 판로가 마땅찮아 결국 도매시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상황을 돌아보면, 가을태풍이 오기 직전까지 양배추는 근 1년간의 대폭락을 겪었다. 농민들의 적자와 자살사례가 속출한 뒤 겨우 가격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국내 생산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수입업자들의 ‘한탕주의’ 수입은 농민들의 부아를 돋울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사건 수입업자 중엔 전직 대아청과 양배추 경매사도 포함돼 있어 허탈감을 더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에 수입업자 현수막 바로 옆에 맞불 현수막을 걸었다. “돈에 눈이 멀어 근본도 모르는 중국산 양배추 수입으로 국내농산물 다 죽이는 수입업자를 규탄한다”는 내용이다. 고창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수입업자들이 일시적 공급 부족을 틈타 수입을 계속하는 건 파렴치한 행동이다. 수입양배추가 가락시장에 진출하면 농민들이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향후 이것이 관례화될 수 있다”며 “도매법인이 경매를 단호히 거부하고 공사도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제주 농민들은 출하중단 등 강경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매를 요구하는 수입업자의 현수막.
경매를 요구하는 수입업자의 현수막.
경매 거부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현수막.
경매 거부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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