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마흔셋의 시작

  • 입력 2020.01.12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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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새해가 밝았다. 성큼 성큼 가는 세월, 멀게만 느껴지던 2020년이 오고야 말았다. 물론 새해라고 특별해지는 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 아니 없어야 했다. 새해 첫 주말부터 불만덩어리가 마당에 들어앉았다.

별안간 무슨 바람이 분건지, 남편은 합의도 없이 태양광발전시설을 마당에 설치해버렸다. 남편의 섣부른 판단에 영업하는 분의 조급함이 합쳐져 단 하루 만에 이 모든 것이 악몽처럼 벌어졌다. 남편과 영업하는 분은 차례로 나의 쓴소리, 큰소리를 들어야 했고 화가 난 압도적인 내 기세와는 달리 이미 태양광 패널은 마당의 대부분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저 패널을 보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집과 남편을 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아이들 방학이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막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첫째부터 셋째까지 학교 아닌 집에 있으니 먹는 것, 버리는 것, 노는 것까지 집안이 난리다. 아이들이 종일 집에 있으니 먹는 것을 해결 하는 게 가장 큰 일이 됐다. 낮엔 간단한 간식으로 때우기도 하고 라면을 먹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사다 놓을 수밖에 없는데, 집안을 정리하다보면 특히 간식류 쓰레기가 많다. 한 번씩 치우는 쓰레기양을 보며 죄책감이 들기도 하는데 사람이 먹고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환경과 아이들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있을까.

대부분을 돈으로 해결해야 하고 계절의 흐름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도시의 삶이 싫어 시골마을 그것도 산 밑에 터전을 잡아 아침이면 새소리, 정적 속에서 이는 바람소리, 밤이면 풀벌레소리, 별빛을 보고 만족하는 것이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이라 여겼다. 그러나 여기서도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차를 몰고 다니고 쓰레기를 양산하는 먹거리를 나르며 도시인 못지않게 소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을행사에선 대부분 일회용을 쓰고 바로 버린다. 마을 공동체 행사라 할지라도 기꺼이 많은 설거지와 노동을 감당해 낼 사람이 없기에 일회용은 당연한 것이 돼버렸고 담겨진 음식도 가공되고 구입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공동체 행사에 필요한 음식과 설거지를 아예 함께 준비하고 소통한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을에서 분쟁은 금기이며 어르신들은 각자의 입장이 있어 합리적인 대화가 힘들다. 특히 젊은 사람이 큰소리 내면 안 되기에 대부분 말하지 못하고 문제는 봉해진 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람은 줄고 농촌 공동체는 와해되고 있다.

2020년 새해, 연초부터 복창을 터지게 만든 태양광시설이 이후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생활하면서 무수히 쌓이고 버려지는 쓰레기는 아이들의 삶에 분명 어떤 영향을 줄 것이다.

어느새 중년이 됐음에도 시골마을에 동화되지 못한 채 마을 공동체에 아무런 역할과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촌사람으로 여성농민이라 자처하며 살아간다. 2020년, 마흔세 살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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