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단절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 입력 2020.01.0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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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고백 하나 하겠다. 4년 가까이 유기농업 관해 기사를 써 왔다. 그럼에도 ‘유기농업’이란 단어의 뜻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유기농업?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농업이지’라 여기며 썼을 뿐이다.

유기(Organic)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생명과 생활력을 갖춤’이란 뜻도 있지만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짐’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대로 해석하자면 유기농업은 ‘살아있는 농업’이자 ‘조화와 연결을 추구하는 농업’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동안 생명과 생활력을 만드는 유기농업은 부족하나마 열심히 다뤘지만, 유기농업의 ‘조화와 연결’ 성격은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이제야 말하자면, 한국의 유기농업 관련 정책이 그 동안 정말로 조화와 연결을 추구하는 농업정책이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2019년까지의 한국 유기농업, 좀 더 범위를 넓히자면 친환경농업 정책은 ‘단절’된 농업정책이었다.

어떤 식으로 단절됐을까? 첫째, 농민과 농업정책 설계자(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정부당국이라 상정할 수 있겠다)가 단절됐다. 잔류농약 있나 없나 살피러 농관원 직원 방문할 때 빼곤, 형식적 교육 한답시고 농업기술센터나 읍·면사무소 강당에 농민들 모아놓고 “잔류농약 검출되면 인증 취소예요”라 경고할 때 빼곤 농민들이 농정당국과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둘째, 농민과 소비자 사이도 단절됐다. 그 동안 정부와 언론은 유기농산물을 ‘안전한 농산물’이자 ‘잔류농약 검출 0%’인 농산물로 규정해 왔다. 이는 법적으로도 친환경농업을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들로서는 비의도적 혼입으로 인한 잔류농약 검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왜 안전한 농산물 생산한다면서 잔류농약이 나오는 거냐? 일부러 농약 치고서 숨기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됐다. 농민들도 왜 잔류농약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유기농업의 진짜 목적은 뭔지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농민과 정책당국의 단절도 문제지만, 농민과 소비자의 단절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얼마 전에 참석했던 친환경농민-소비자 상생협력 방안 토론회에서도 느꼈지만, 소비자단체들의 유기농민들에 대한 의심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유기농민들 중에 농약 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 의심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법이 유기농업의 가치와 존재 목적을 잘못 이야기해 온 상태에서 그 의심은 할 수밖에 없는 의심이었다.

2020년엔 유기농업으로 생태환경을 살리는 것 못지않게, 농민과 소비자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만드는 게 과제로 대두된다. 그러려면 친환경농어업법의 ‘생태환경 보전’ 성격 강화에 발맞춰 관련 정책과 홍보방식도 바꿔야 한다. 아무쪼록 2020년이 지금의 단절농업을 진짜 유기농업으로 바꿔내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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