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l 농가부채가 농민을 죽음으로 내몰다

[창간 20주년 특집] 20년 전 한국농업 그리고 오늘
새천년 맞은 농민들, 38조원 빚더미에 깔려 신음 … 특별법 제정 요구
개방농정 펼치던 정부, 공적자금 100조원 풀더니 농가부채 해결엔 ‘찔끔’

  • 입력 2020.01.05 18:00
  • 수정 2020.02.07 17:02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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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한국농정>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00년 11월 창간호부터 2001년 12월까지 본지의 지면을 돌아보고자 한다. 20년 동안 450만명에 달하던 농민의 숫자는 300만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농업계 현안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도 많았다. 이에 본지는 20년 전 농업계를 조명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00년 11월 27일 본지 창간호 1면 톱기사의 제목은 “이러다 농민 다 죽는다”였다. 본지는 기사를 통해 재벌 회생을 위해 100조가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도 농민들의 부채 경감을 위한 지원엔 인색했던 정부 및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농민이 처한 현실이 당시보다 나아졌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승호 기자
2000년 11월 27일 본지 창간호 1면 톱기사의 제목은 “이러다 농민 다 죽는다”였다. 본지는 기사를 통해 재벌 회생을 위해 100조가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도 농민들의 부채 경감을 위한 지원엔 인색했던 정부 및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농민이 처한 현실이 당시보다 나아졌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승호 기자

본지는 2000년 11월 27일 첫 신문을 펴냈다. 본지의 첫 1면 톱기사 제목은 “이러다 농민 다 죽는다”였다. 당시 농가 부채와 농산물 가격 폭락에 고통받는 농민의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천년을 맞은 2000년이지만 농업계는 농민들의 잇따른 자살로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농민들의 자살만 이 해 하반기에 6건에 달했다.

농민들의 연이은 자살은 급격하게 불어난 농가부채가 원인이었다. 1999년 평균 농가소득은 호당 2,232만원인데 평균 농가부채는 1,854만원이었다. 전체 농가부채는 38조원 규모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이에 21개 농민단체들은 11월 21일 전국 곳곳에서 농가부채특별법 연내제정 촉구 1백만 농민궐기대회를 열었다. 시군별로 동시에 열린 농민궐기대회엔 총 20여만명의 농민들이 참가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점거하거나 시·군청, 지역의 정당 및 국회의원 사무실 등을 찾아 농가부채 대책을 촉구했다.

앞서 농민단체협의회 단체장들은 17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점거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농협중앙회로 자리를 옮겨 22일까지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당시 농민단체들은 연체이자마저 갚을 수 없는 파산직전 농민들과 연대보증으로 적색거래자로 등록된 농민들을 구제하는 게 시급하다며 △정책자금 상환기간 5년 유예 및 금리 3%로 인하 △상호금융은 금리 5%로 인하 △연체이자는 전액탕감 등을 요구했다.

당시 급격히 불어난 농가부채는 역대 정부의 농정실패와 개방농정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노태우정부부터 문민정부, 국민의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명분 아래 영세농은 탈농을 유도하고 상층농은 규모확대를 위해 지원을 집중하며 농업의 구조조정을 꾀했다. 농업의 경쟁력이란 오로지 생산성 향상을 뜻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개방농정 아래 농산물 가격 폭락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농업수익성이 계속 악화됐다. 이같은 수익성 악화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규모 확대는 결국 농민들의 상환능력을 넘어선 농가부채 급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2000년 겨울을 뜨겁게 불태운 농가부채특별법은 여야3당이 합의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농림부(장관 한갑수)는 집권당인 민주당이 농가부채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에도 반대입장을 밝혀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여야가 합의한 농어업인 부채경감 특별법 역시 핵심 중 하나인 연대보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원규모도 농민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실제 문제해결엔 이르지 못했다.

당시 농민단체들은 애초 요구대로 특별법이 제정됐다면 관련예산 규모가 3조원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부는 재벌을 포함한 기업과 금융 회생에 자그마치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농민회생에 3조원을 투입하는 건 외면한 것이다. 특히 한-칠레 FTA 협상이 진행되는 등 문제의 근원인 개방농정은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뒷걸음치는 농업소득, 이대로 괜찮나

약 20년이 지난 오늘, 농민들 현실은 어떨까.

통계청이 지난해 5월 발표한 2018년 농가 및 어가경제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평균 농가소득은 4,207만원이며 평균 농가부채는 3,327만원으로 나타났다. 전년과 비교해 농가소득은 10% 오른 반면, 농가부채는 26.1% 상승한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축산분야가 이끈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축산농가의 소득은 4,218만원이며 부채는 6,104만원이었는데 2018년 축산농가의 소득은 7,824만원이며 부채는 1억304만원으로 조사됐다.

축산분야의 소득과 부채가 동시에 급등한 건 정부가 시설현대화사업 등 정책사업을 통해 규모화를 촉진한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축산농가들은 시설현대화를 진행하며 부채가 늘어나고 사육규모가 확장되며 소득도 덩달아 상승한 것이다.

축산농가의 2018년 평균 농업소득은 5,970만원으로 2010년 2,580만원에서 2배 이상 올랐다. 이에 힘입어 축산농가는 총소득에서 농업의존도가 76.3%에 달한다.

반면, 경종농가들은 대체로 총소득에서 농업의존도가 40~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평균 농업소득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경종농가들은 되레 하락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쌀은 2010년 720만원의 평균 농업소득이었는데 2016년엔 580만원까지 떨어졌다가 2018년에야 1,355만원으로 회복했다. 과수는 2010년 1,998만원을 기록했는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1,600만원대를 횡보하다가 2018년 2,107만원으로 회복됐다. 채소는 2010년 1,423만원, 2012년에는 1,490만원의 농업소득을 올렸다. 그 뒤로는 2018년까지 1,400만원대를 넘지 못한 채 답보하고 있다.

전반적인 농업소득의 침체는 농산물 가격 추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각에서는 농업 전 분야가 축산처럼 규모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규모화는 20년 전처럼 농가부채의 급격한 증가만을 가져올 뿐이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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