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89] 새해에는

  • 입력 2020.01.05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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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또 한 해가 시작됐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다를 리 없건만 새해에는 뭔가 새롭고 다른 태양이 떠오르기를 누구나 고대한다. 지난해 아쉬웠던 일들이 새해에는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정초엔 더욱 그렇다.

귀농·귀촌 5년차를 맞이한 금년에는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미니사과 ‘알프스 오토메’ 대신 조금 큰 사과 ‘돌체’나 ‘시나노 골드’를 시도해 보려 한다. 친환경 사과 재배방법을 조금은 터득했으니 이번에는 시행착오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친환경 유기농 사과 농사를 잘 지어 열매를 많이 딸 자신은 없다. 하지만 땅강아지, 메뚜기, 개구리, 지렁이 그리고 온갖 미생물들이 살아 숨쉬는 흙과 생태계를 조금이라도 살린다는 자긍심을 느끼며 살고 싶다. 농부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알고 행하는 참 농부가 될 수 있도록 초심을 놓지 않으려 한다.

작은 농장의 입구도 부직포를 걷어 버리고 조금 예쁘게 만들고 싶고, 농장에 간판도 달아보려 한다. 농막 주변도 잘 정리해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농장 뒤쪽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 숲과 동쪽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힐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가꾸고 싶다. 그렇다고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지인들이 원하면 하루 이틀 농막에 머물면서 이 아름다운 자연과 농촌지역을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 6평 농막은 소박하지만 침실, 욕실, 주방 등 있을 건 다 갖춘 작은 집이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양양인문학아카데미’도 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협의해 금년에는 한두 강좌 정도 더 늘려 보고 싶다. 양양인문학아카데미는 양양지역에 거주하는 교수, 작가, 예술인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지고 있다. 거창하게 수십 수백 명을 동원하는 상업적인 아카데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강사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하는 소박한 만남의 장이다. 물질만능의 시대이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높이는 시간들이 됐으면 더욱 좋겠다.

또한 힘닿는 데까지 지역에서 살며 봉사하는 농민 및 활동가들을 미력이나마 옆에서 돕고 싶다. 구체적으로 도울 일이 없다면 격려라도 해드리고 싶고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나이에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농업·농촌·농민에 빌붙어 살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각종 기생충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촌에 내려와 산 지 만 4년이 지났지만 우리 지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문화유적과 농촌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많이 찾아보지는 못했다.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금년에는 양양은 물론 속초·고성·강릉·인제 등 이웃하고 있는 지역도 자주 찾아가고 싶고, 농촌 현장을 묵묵히 지키며 살아내고 있는 농민들도 찾아봬 인사라도 드리고 싶다. 아름다운 설악산과 오대산과 동해의 절경은 덤이다.

무엇보다 금년에는 이곳 양양에서 시작해 속초·고성을 거친 뒤 금강산, 함경남도 명사십리와 원산, 함경북도 주을온천과 함흥, 그리고 나진·선봉지역까지 동해바다의 백사장을 따라 주욱 올라갔다 오고 싶다. 수시로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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