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이제껏 했으면 됐다! 그만해도 돼!

  • 입력 2020.01.05 18:00
  • 기자명 강정남(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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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전남 나주)

마을회관에 가보면 여자들이 쓰는 방과 남자들이 쓰는 방이 각각 따로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여자들이 쓰는 방은 방이라기보다 부엌을 많이 쓰는 편이다.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마을 프로그램을 들어갔더니 엄마들이 부엌에서 프로그램을 하자고 했다.

너무 좁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마땅치 않다고 했더니 그럼 남자방에서 하자고 하신다. 남자방은 훨씬 더 넓었다. 여성이 훨씬 숫자도 많고 이용횟수도 더 많은데 왜 좁은 부엌을 방이라고 하면서 쓰시냐고 했더니 당연히 우리가 좁은 거 쓰는 게 편하다고 하신다.

공동급식도 남성은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가 차려주는 밥상에서 당연히 받아 드신다. 밥 먹다가도 모자란 것이 있으면 당연히 갖다달라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들이 부엌이 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

여자라서 이래야 하고 여자라서 저래야 하고 그런 시절 이만큼 사셨으면 그만할 때도 됐다. 평생 농사일로 고생하셨으면 이제는 엄마들도 좀 마을행사나 공동급식에서 손 놓을 때가 됐다.

모든 노동에는 그에 마땅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 금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말이다. 먼저 공동급식에서는 마을 엄마들의 수고가 아닌 마땅한 대가를 주고 밥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예산이 포함돼야 마땅하다. 마치 가정에서처럼 무보수 가사노동을 마을단위까지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

나주에서 여성농민 성평등 강사 교육이 진행됐고 수료식까지 마쳤다. 이제 마을단위로 들어가 교육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들의 사고를 탓하기 전에 같이 이해하는 과정을 먼저 짚어야 한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들에게 잘못됐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소통은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성평등은 모든 인간이 여성 또는 남성이라서 갖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되는 게 행복한 것이라 본다. 차별과 혐오, 이걸 해서 무얼 얻자는 것인가! 권력, 그 자그마한 권력이 행복하던가! 아니다. 이제껏 당연해서 편했던 생각을 버리고 당연하지 않아서 불편한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서로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 힘든 노동도, 사회적 문화적 소외도, 선택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오로지 일에 묻혀 살아왔을 따름이다. 그간의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지 않겠는가!

농촌에 살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내가 지은 농산물을 나눠먹을 때다. 그럴 때면 또다시 씨앗에 고맙고 땅에 고맙고 하늘에 고맙다. 더불어 하늘과 땅과 씨를 한 몸에 담아 이제껏 농사지은 농민들에게 제일 고맙다.

특히 여성농민, 엄마들에게 엄청 고맙다. 하나같이 거칠고 투박한 손이지만 그 손으로 우리를 먹여 살렸다. 그 위대한 여성농민, 엄마들의 손에 이제 제대로 된 가치를 담아 돌려줘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세상은 여성농민들이 행복한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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