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양파, 자조금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라

마늘·양파 의무자조금 초읽기
농민 주도 수급정책 실현될까
농민참여·자율성 보장이 관건

  • 입력 2020.01.05 18:00
  • 수정 2020.01.05 20:4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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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및 문재인정부 농정규탄 전국생산자대회’에 참석한 농민 3,000여명이 양파·마늘 등 각종 채소의 가격 폭락을 상징하는 팻말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및 문재인정부 농정규탄 전국생산자대회’에 참석한 농민 3,000여명이 양파·마늘 등 각종 채소의 가격 폭락을 상징하는 팻말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은 농민 주도형 수급정책 모델을 지향한다. 때문에 농민들도, 농식품부도 기존의 의무자조금들보다 훨씬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핵심은 자율성·주체성 보장에 있으며 논의 초기부터 농민-농식품부 간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자조금의 자율성 화두는 일반적으론 기금 운용에 관한 것이다. 의무자조금엔 농가 거출금과 최대 1대1 비율의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다. 때문에 자조금의 운용을 대의원들이 의결했다 하더라도 다시 농식품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는 자조금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이에 마늘·양파 농가들이 농식품부의 승인권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자조금법과 보조금법 등 법률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업계획 변경 조건을 완화하는 등 최대한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농식품부의 약속을 받아냈을 뿐이다.

그러나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이 그리는 그림에서 기금 운용은 오히려 작은 부분이다. 마늘·양파 자조금이 기존 자조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단순한 기금 운용보다도 정책 참여 주체로서의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량이 확정되기 이전 ‘선제적 수급대책’이 어려운 이유는 농민-소비자-유통인 간 합의와 공정위의 판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통과 자체가 쉽지 않거니와 통과된다 해도 이미 적기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앞으론 자조금단체가 의결하고 농식품부가 승인만 하면 자조금법에 따라 바로 수급대책(생산조정·출하조절) 시행이 가능해진다.

또한 농민들은 수급안정 및 자조금 거출률 확보를 위해 농협 계약재배율 대폭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수입농산물 통관·유통을 농민들이 철저하게 감시·모니터링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요컨대 농민들은 자조금을 통해 농식품부가 하기 곤란한 공격적이고 자구적인 역할을 수행하려하고 있으며, 기금 운용 자체보다도 이런 ‘역할’에 대한 자율성·주체성 보장이 더욱 중요하다.

지난해 결성한 품목 농민단체 전국마늘생산자협회와 전국양파생산자협회가 마늘·양파 의무자조금 조성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1일 열린 마늘협회 창립총회(위)와 4월 15일 양파협회 창립총회.
지난해 결성한 품목 농민단체 전국마늘생산자협회와 전국양파생산자협회가 마늘·양파 의무자조금 조성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1일 열린 마늘협회 창립총회(위)와 4월 15일 양파협회 창립총회.

관건은 농식품부가 농민들을 얼마나 존중하느냐다. 기금 운용과 마찬가지로 자조금이 의결한 수급대책도 승인권은 결국 농식품부가 갖고 있다. 또한 자조금 의결사항인 생산조정·출하조절 외 여타 정부의 수급사업과 정책엔 농민 의견을 반영해야 할 의무가 없다. ‘농민 주도형 수급정책’이라곤 하지만 농민들의 뜻을 정책에 얼마나 반영할지는 여전히 농식품부의 재량인 것이다.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은 농협이다.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은 농협의 임의자조금을 해체하고 전국마늘생산자협회·전국양파생산자협회와 농협이 손잡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지금껏 임의자조금을 이끌어왔던 농협으로선 의무자조금에서도 큰 지분을 노릴 가능성이 높은데, 문제는 농협이 지금까지 정부 수급정책에 참여하면서 농민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지 못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의무자조금 내에서 농민-농협 간 지분 다툼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농민 정책참여의 분수령인데, 교통정리를 해야 할 농식품부는 관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농민진영 일각에선 자조금이 농식품부의 정책 명분 마련을 위한 거수기나 수급책임 회피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마늘·양파 농가들의 폭락대책 요구와 협회 결성을 ‘소 닭 보듯’ 했던 농식품부라 우려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이 농식품부와 어깨를 마주걸게 될지, 농식품부의 손아귀 안에 갇힐지는 농민들의 역량과 농식품부의 진정성에 달려있다. 분명한 건 마늘·양파 농가들이 의무자조금 출범을 위해 전에 없이 열정을 불태우고 있으며, 농식품부도 “농민들이 가져야 할 권한을 농민들께 돌려드리겠다”며 의무자조금을 통한 정책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늘·양파의 새로운 자조금 모델이 역경과 우려를 뚫고 농산물 수급정책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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