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에 어떤 가치 담을지 논의 시작해야”

[인터뷰]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입력 2020.01.01 00: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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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농민권리선언)은 지난 2018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최종 채택됐다. 국제농민운동단체인 비아캄페시나가 2008년 공식적으로 명문화한지 10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 선언이 가리키는 농민은 누구이며 권리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다 보면 결국 중소가족농 혹은 소농이 가진 다기능성과 맞닿게 된다. 소농은 많이 쓰이는 정의이지만 명확히 규정된 바는 없다. 선언이 지향하는 바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것도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농민권리선언은 농업 전반에 걸친 대논쟁의 시작점이 될 전망이다. 

농민권리선언의 의의는 무엇인가?

1996년 인도네시아에서 병해충방제를 생태적으로 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이 연구를 하던 과정에서 농민이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지을건지 선택하는 권리를 자본이 침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제3세계에선 정부가 개발독재를 펼치며 농민들을 시장에 내모는 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이에 저항하는 흐름에서 농민에게 권리가 있다는 담론이 형성됐다. 그래서 이 선언은 자본이 강요하는 방식에 맞서 농민의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다.

농업문제를 볼 때 농민이 가진 권리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다는 건 상당히 의미있는 발상의 전환이다. 유엔에서 이 선언이 채택됐다는 건 비록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농민의 권리에 관한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이 선언이 규정한 권리 중 특징적인 것은?

지금의 먹거리 체계는 유통과 소매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농민권리선언은 농민의 권리로서 식량주권을 담으며 자본에 맞설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논의를 거치며 약화된 면이 있지만 세부조항엔 농민이 적절한 소득을 얻어야 한다는 권리도 따로 두었다.

현재 농민들은 농사방법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외부 자원에 의존하는 녹색혁명의 방식으로 강제받고 있다. 왜 농민들이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못 짓게 됐나? 시장을 장악한 자본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권리선언은 환경보존을 의무가 아닌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농민의 규정은 어떻게 해야할까?

시간과 매출에 국한된 농민이 아닌 땅의 사람들, 농업을 지키고 농사를 지속하려는 사람들로 규정하려 노력 중이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존엔 규모화 농업만 배제한 전체농업을 포괄해 중소가족농 혹은 소농으로 지칭했다.

한편, 비아캄페시나는 식량주권과 농생태의 관점에서 가치를 정립해왔다. 농사규모뿐 아니라 그 안에 담은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선 소농을 섣불리 규정하기보다 소농이란 규정에 담을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농업계를 시작으로 사회적으로 이 가치에 합의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하는 단계라 본다.

우리는 경제적 관점에서 농업을 보는데 익숙한데?

농민권리선언은 인식의 전환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고유의 성질이 있는데 이를 경제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엔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서 다기능성으로 보다 의미를 확장해서 논의되고 있다.

농업의 다기능성은 투입재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대농이 아닌 중소가족농이나 소농에서 더 많이 창출된다고 본다. 이는 투입재를 많이 사용하고 생산성 향상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 방식과 단일품목에선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다품목 소량생산 방식으로 가족노동력으로 감당가능한 방식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 적용하면 다양한 문제가 나온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가족노동력만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한계가 뚜렷하다. 우리의 맥락에서 심층적인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 합의할 방향성이 중요하다.

규모화 담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직 생소하겠지만 농민단체들이 농민권리선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결국 농업의 대안성과 지속가능성을 근거로 한 자기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 안에는 생태성과 환경성도 들어갈 것이다. 결국 어떤 시스템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소농이 가진 농업의 다기능성을 제도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과제다.

이 선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유럽은 타 대륙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비아캄페시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논의하며 진전을 보고 있다. 유럽의 논의과정을 보면 농사 규모보다 농사의 내용이 중요하다. 투입재나 석유 의존을 탈피하고 생태적 실천을 얼마나 하려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수의 농기업이 소유한 종자권은 그 안에서 어떻게 기업이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걸 규제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현재 농민수당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때 농민의 규정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나 재규정해야 한다. 또, 문재인정부의 농정을 농민권리의 관점으로 지표를 구성해 모니터링하는 안도 아이디어 수준에서 얘기되고 있다.

유엔은 농민권리선언에 담긴 농민의 권리에 대해 각국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참여연대가 식량권에 관해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활용해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사안인 종자나 부재지주의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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