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미, 산업단지와의 1차전에서 승리하다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⑫

  • 입력 2020.01.01 00: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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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마을잔치가 한창인 가운데, 엄춘옥 부녀회장님(왼쪽)이 유주영 이장님(가운데)의 권유로 인사하다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부녀회장님은 좋은 소식을 듣자마자 알찬 소머리국밥을 끓여낼 테니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보자고 나섰습니다.
마을잔치가 한창인 가운데, 엄춘옥 부녀회장님(왼쪽)이 유주영 이장님(가운데)의 권유로 인사하다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부녀회장님은 좋은 소식을 듣자마자 알찬 소머리국밥을 끓여낼 테니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보자고 나섰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12월은 제게도, 주민들에게도 의미 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7월 초부터 관지미를 다녔고 이제 해가 저물었으니, 벌써 반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마을을 다닌 제 소회와 더불어, 한편 어르신들께는 어떤 좋은 일이 생겼는지 알아봅니다. 

 

관지미를 다닌지 벌써 반년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이라는 부제에 적혀있듯, 읽고 계시는 관지미의 이야기는 1년 동안 연재될 예정입니다. 첫 이야기를 내보낸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으니 이제 막 이 긴 마라톤의 반환점에 도달한 셈입니다.

한 달에 두 개씩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는 시점에는 아마 스물넷째란 서수가 붙겠지요. 그 많은 징검다리 돌 중 절반을 건넜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도 이젠 관지미의 ‘명예’ 주민 자격쯤은 얻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믿고, 적어도 제겐 의미 깊은 이 시점을 기회로 제 이야기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농업지 기자로서 농촌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라 굉장한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큰 고난이기도 했습니다. 매번 글을 내보낼 때마다 서두에 적는 이 기획의 커다란 의미는 잠시 접어두고, 기자라는 직업인의 입장만 놓고 보면 이 일은 그야말로 대단한 불안요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잠깐 ‘일’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신문에서는 종종 4회, 5회씩 연재로 내놓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몇 번씩 연이어 자세히 써야할 만큼 중요한 주제거나, 혹은 다루려는 소재의 내용 자체가 방대해 양적으로 팽창이 불가피한 경우들입니다. 그리고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계획한 이 일은 그 숫자가 24인 것이지요. 매번 큼지막한 신문 한 면을 꽤 의미 있는 내용으로 스물네 번을 채우면서 흥미도 있어야 하는데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거나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실천 중인 독자께선 제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저는 지난 7월 첫 방문 때 마침 한창이었던 서울여대의 농활 일정을 배경 삼아 앞으로 주 무대가 될 이 마을의 성격을 담은 서막을 썼죠. 그 뒤 마을회의를 찾아 이 마을의 모든 가구를 소개했습니다. 이후엔 한집씩 일대일로 관계를 맺어가며 농촌의 다양한 생활상을 배워나간다는 계획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고작 열 집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니, 모든 가구 그리고 모든 어르신들과 관계를 맺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가 마련했던 6개월 치 계획은, 초기에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연말에 이르자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말았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도 (비록 오래 전이지만)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일어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때 얻은 상처를 지금껏 들여다보며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채 사는 집이 있는가하면, 사는 얘기를 하자니 하고 있는 농사일의 고충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어 행여나 그 내용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돼 애써 삭히는 집도 계셨죠.

심지어 ‘이 마을엔 이런 분들이 살아요!’라고 두 번째 편이 나갔을 때 이름 석 자가 실린 것조차 너무 껄끄럽고 남사스러웠던 어떤 어르신은, 오랜만에 뵌 추수 현장에서 콤바인이 논을 두 바퀴 돌 동안이나 잔소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다시 신문에 실리는 것도 물론, 통한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셨지요(아니 분명, 제가 마을회의 때 모두를 처음 뵀을 땐 모두가 제 등장을 반가워하셨는데 말예요…).

도시 사람인 제겐 그야말로 상상초월의 사연들이지요. 하여튼, 본래 농한기가 끝날 때까지 마을에 최대한 녹아들려 했던 제 계획은 그렇게 딱 절반 정도만 성공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가 성사된 가구는 여섯 집에 그쳤으니까요. 이런 사연들을 접한 것도 물론 농촌사회를 배우는 좋은 과정입니다만 기왕 결과물까지 낼 수 있었다면 여러모로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사실 큰 희망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저는 이 일을 마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계속 그분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시도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어쨌든 제가 처음 노인회장님 댁을 취재하며 알려드린 계획은 완성이 어려울지도 모르니, 적절한 시점에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지미, 산업단지와의 1차전 ‘승리’

공교롭게도 지난 12월은 저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의미가 깊었습니다. 동지가 다가오던 어느 날 저녁, 마을 주민들은 6개월 전 산업단지 반대를 결의했던 것처럼 또 다시 한데 모였습니다. 사실 그 때 이후로 여태껏 어르신들을 한 곳에서 뵐 기회가 없었는데, ‘일’이 종종 생기긴 했어도 모두가 모일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모두 모여 축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마을을 집어삼킬 진천군의 ‘진천군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조성사업 계획’을 접한 이후 주민들은 나름 대응을 고심했습니다. 부지로 계획된 면적을 보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거 지역뿐만 아니라 농지가 상당히 많이 포함돼 있었죠. 이 점에 착안해 주민들은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접촉해 이렇게 농지전용(농업 용도로 지정된 토지의 사용목적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 대량으로 일어나도 되는 건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 농식품부가 진천군에 “그러면 안 돼!”라고 했다지 뭡니까.

“산업단지가 못 들어온다고 해서, 동네분들하고 같이 고생했으니까 따끈한 국물 먹으면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걸 준비하신 우리 엄춘옥 부녀회장님께 박수! 아니, 우리 김영창님(남편)이 하신 게 아니라, 엄춘옥 여사님이 한 거라구. 아 그리고 박순자 여사님도 씀바귀랑 이것저것 했으니 그것도 박수! 강창성 여사님도 겉절이 해오시고, 아, 콜라비는 제겁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잔칫날이 된 것입니다. 엄춘옥 부녀회장님이 종종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그 집에 찾아갔을 때 이미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죠? 저번 여름 닭백숙에 이어 오늘은 소머리국밥을 한 솥 끓여냈는데, 이 좋은 날을 위해 급히 휴가까지 내고 전날 밤부터 머리고기를 재느라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하니 그 놀라운 애정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한창 제철인 포항 과메기까지 들고 오셨습니다. 여성인 유주영 이장님은 역시 밥상에 들어간 그 노고를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머리고기 한 시간 고아 놓은 다음에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불 질러 놓고 또 두 시간, 거의 한 시까지 그러고 있었어. 뼈 발라 놓고 덮어놓고 잤지. 그래도 맛있게 드시니까 너무 좋잖아. 한 20명 더 와도 될 뻔했는데!”

지역에서 이장님 부부와 함께 농민운동을 하는 박기수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님과 이날 귤까지 들고 찾아 온 이갑인씨, 그리고 지난 연재에서도 산업단지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셨던 송관섭 미잠리 이장님 등, 경사스러운 날이니 만큼 그간 마을 주민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주변인들도 초청을 받아 회관은 30명에 가까운 인원들로 북적였습니다.

농식품부에 문의했더니 외부로 알려줄 수 없는 정보라고 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12월 들어 농식품부가 진천군에 무언가 통보를 한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식품부에 문제를 제기한 이장님 남편 김기형씨에 따르면 그 내용이란 건, 진천군이 시도하는 농지전용을 동반한 산업단지 계획에 대한 부정적 입장인 것 같네요.

“농지전용은 안된다고 통보를 한 거고요, 지역에서는 이게 (산업단지가) 이미 다 결정이 나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부동산에서 부추기기도 하고. 그래서 어디 큰 데마다 현수막을 걸어서 못 박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주민들은 산업단지 계획의 첫 시도가 실패했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 승전보를 온 진천에 전할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기분 좋은 자리가 마무리 됐습니다. 현수막을 걸었다는 소식에 며칠 뒤 진천군에 들러보니, 군청과 진천읍사무소 앞에 보란 듯이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에 웃음이 났습니다.

‘환영, 농림부 ‘농지수용 불가’ 결정!’

진천군과 건설사가 이대로 물러날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주민들이 직접 살던 곳에 살 권리를 지키고자 합심해 움직였고 또 실제로 성과를 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취재를 다니며 이전에 비슷한 일들을 겪었던 마을들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고요. 한해를 뜻 깊게 마무리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으로 올해 마지막 방문을 마칩니다. 새해에도 마을을 지켜낼 동력은 굳건할 것 같네요.

농림부 ‘농지수용 불가’ 결정! 진천군 진천읍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읍사무소 앞길에 관지미의 명의로 걸린 현수막입니다. 적힌 문구에 기쁨이 묻어납니다.
농림부 ‘농지수용 불가’ 결정! 진천군 진천읍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읍사무소 앞길에 관지미의 명의로 걸린 현수막입니다. 적힌 문구에 기쁨이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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