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새해엔 농지실태조사부터 단행하라”

[새해 농담(農談)]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내 염원은 제2의 농지개혁 보는 것
농민 없는 농촌, ‘농민수당’이 희망

  • 입력 2020.01.01 00:00
  • 수정 2020.01.08 13:4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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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을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 강남 인근에서 만났다. 2019년 공식적인 외부활동 없이 조용히 한해를 보냈다고 했다. 그 이유로 굵직굵직한 행사에 꼭 참석해 후배들에게 싱글싱글 덕담하는 농업계 대선배 모습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새해엔 다시 할 말은 하는 본래 모습으로 살겠다고 전한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농정에 기대할 것 하나 없지만,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 농지실태조사와 농지개혁 그리고 농민수당 이 두 가지 목표는 놓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은 지난 1년을 ‘멘탈붕괴’ 속에 보냈다. 막내동생을 시작으로 5개월 사이 형제 셋을 잃고 나니 슬픔과 충격에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한편으로 이제 내 차례구나…, 그런 생각도 자연스레 들었다.”

그래서 김 장관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명예직함도 모두 정리하고 글 쓰는 일에도 손을 딱 뗐다. 다른 모든 활동은 정리했지만 13년째 옥상에서 하는 ‘쿠바식’ 상자텃밭농사만큼은 여전히 집중하고 있다. 외부 직함은 버렸으나, 도시농부 이름만은 가장 나중까지 지키고 싶기 때문이었다.

“내 신산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아내가 다쳐서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아내가 다친 걸 보고 ‘액땜’했다고 하더라.” ‘다음은 내 차례’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액땜이라면 아주 고약한 액땜이지만, 최근 아내가 회복세를 보이고 심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의 끝자락이자 2020년 새해가 코앞에 닥치자 마음에 새살이 돋았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심장에 남는 사람들 돌아봤던 지난 1년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도시농부로만 1년을 오롯이 지내다 보니,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기도 포천의 평화나무농장 원혜덕씨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갈 정도로 가깝다. 또 숱하게 쏟아지는 뉴스 중에서도 꼭 필요한 기사들만 또렷이 구분됐다. 쭉정이는 뜨고 알맹이는 가라앉는 씨앗처럼 자연스런 분리현상이었다.

“새해가 다가오니, 사람들이 많이 생각났다. 전국농민회총연맹 27주년 행사 때 찍은 사진을 봐도 여전히 반가운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 전농 같은 농민운동단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근래 농민단체들이 제 역할을 못하거나 정체성이 모호해 답답하고 속상하다. 자본에 좌지우지 되면 소신껏 말할 수 없게 된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

김 장관은 미국의 시인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 한 구절을 막힘없이 외워 들려줬다. ‘나는 화살을 쏘았네. 그 화살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네… 나는 노래를 불렀네. 내 노래는 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네.’ 숱하게 현장을 다니며 농업에 대한 소신을 밝혔던 김 장관이지만 지금 농업이 처한 현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문 기사 한 토막에서 자기가 했던 말들이 인용되는 것을 보노라면, 꼭 이 시의 후렴구와 같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보았네. 참나무 밑동에 꽂혀있는 그 화살을 무심히 퍼지는 목동의 피리가 내 노래인 것을.’

세상 어딘가에 김 장관의 농업철학이 내려앉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원로학자를 다시 현장으로 이끌고 있다.

“내가 했던 말, 내가 썼던 글이 그냥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가슴 속에 살아남아서 체화돼 다시 표현될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언젠가 불렀던 노래, 공중으로 날아간 화살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확인하는 기분이 꼭 이럴 것 같다.”

그래서 새해에 꼭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김 장관은 말했다.

“반드시 전국 농지소유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엔 농지소유 실태조사를 하고 하반기엔 농지개혁에 돌입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농지문제 하나만 손을 대도, 지난 빈털터리 농정공약 허물쯤은 다 덮고도 남는다. 그만큼 농민들에게 농지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21세기, 여전한 소작농의 시대

농지는 생산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 김 장관의 철칙이다.

“농민들이 농지를 빌려 쓴다는 의미로 ‘임대차’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농지임대차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모름지기 3년 이상 장기로 농지를 빌리는 것이 임대차인데, 매년 땅주인 마음대로 결정되고 있다. 이건 분명 소작제다. 변형된 소작제를 우리는 임대차라고 쓰고 있을 뿐이다.”

김 장관은 죽산 조봉암 선생 탄생 100주기 행사에서 연설할 일이 있어 자료를 찾아봤더니, 농지개혁이 있던 1949년, 1950년 그 때보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국 농지의 50% 이상이 농업과 무관한 도시출신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가장 심각한 원인이 농지문제다. 농민은 소멸되고 농촌도 사라지고 있다. 농촌에 남은 것이라곤 토지 투기 뿐이다.”

단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전남 목포와 무안, 신안을 잇는 ‘천사대교’ 연도교의 등장이 이 지역을 어떻게 바꿔놓았나를 보라는 것이다.

천사대교, 왜 악마대교가 됐나

섬과 섬이 육지와 연결됐다. 지긋지긋한 노동과 떨쳐지지 않는 가난이 섬 농민들의 굴레였다면, 연도교는 탈출구와 같았다.

“지난해 팔금도, 안좌도, 자은도 이런 섬들을 가봤다. 1,004개의 섬이 있다고 천사대교라 이름 붙여진 연도교 덕에 교통이 참 좋아졌다. 그런데 섬에 들어갈 때마다 도시민과 투기꾼들을 위한 천사대교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섬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도시로 가길 원했고, 값싼 땅은 개발업자들에겐 아주 좋은 투자처다.”

짧은 기간에 섬 안의 땅은 손 바뀜이 일어났다. 농촌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도시사람들이 메우면서 큰 건물이 들어서고 리조트가 조성되는가 하면 농사를 짓던 마을은 자연스레 휴양지로 탈바꿈 했다. 천사대교가 아니라 악마대교인 셈이다.

“빠른 속도로 농촌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바로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현상이 지금 우리나라 전체 농촌과 농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신안군 1,004개 섬에 인구가 50만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마도, 10만명에서 20만명으로 대폭 준 것으로 안다. 이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토박이가 아니라 외지인일 테고, 리조트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을 게다. 이곳만 집중 취재해 봐도 우리 농촌의 지난 70년 소멸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농정개혁의 두 축으로 농지개혁과 농민수당 실시를 손꼽았다. 

농정개혁 두 축, 농지개혁과 농민수당

김 장관은 전남 해남의 농민수당을 뜻 깊은 농정변화라고 반겼다.

“앞장서서 농민 기본소득을 주창해왔던 입장에서 보면, 해남에서 농민수당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금액은 한 달에 50만원씩은 돼야 한다. 그렇게 해도 연간 5조원에서 6조원이면 충분하다. 처음엔 다 꿈같은 얘기라고 했는데, 이제 농민수당은 실행여부를 떠나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지 않나. 결코 꿈이 아니었다. 유럽 국가들은 일찍부터 농민 기본소득을 정착시켰다.”

농민 인구가 대폭 줄었지만 오히려 규모를 키우고 있는 농업공무원들과 농업기관들도 거품을 빼라고 주문했다. 농업예산이 엄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차원에서도 기관들의 몸집 줄이기는 필수라는 점을 짚었다.

“정부도 충분한 명분이 있다. 농민 수가 줄어드는데 농업기관들이 이렇게나 큰 규모로 많이 있을 필요가 있나. 거기에 편성했던 예산을 줄이고, 대신 농민들에게 50만원씩 직접 지원하라. 나라면 매달 50만원, 1년에 600만원 받으면서 농촌에 사는 것을 택하겠다. 농업소득이 1년에 1,000만원이니, 그에 비하면 만족도가 높지 않겠나.” 단 조건이 붙는다. 농사는 반드시 친환경이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제초제나 농약 사용을 원천 차단하는 친환경농사 외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도시민, 노동자들로부터 공감도 얻는다.

“농민수당이 전국 농민들 모두에게 혜택이 가도록,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농민수당이 농촌에서 사람이 떠나지 않는 요소로 될 만큼 정착되고 지급 규모 역시 현실화해야 한다.”

‘생전에 제2의 농지개혁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김 장관은 농민수당까지 포함해 2가지가 농정개혁의 핵심 축이라고 설명했다.

측근정치를 경계하라

농업계가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분노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GMO 표시제 번복과 아이들이 먹는 학교급식에 GMO를 추방하겠다던 공약이 용두사미가 됐다.

“GMO를 엄격히 관리하면 물가가 오른다는 둥 통상마찰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둥…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GMO 문제에 이런 입장을 전했다. 이건 완전히 농민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기업대변을 해도 정도껏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전 총리는 기자시절부터 잘 안다. 대통령 측근들이 너무 윗사람 눈치를 보는 인물들로 채워졌던 것이 문재인정부의 농정실패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가 잘해서 대통령이 됐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명박·박근혜가 워낙 엉터리라 반사이익을 봤을 뿐이다. 이낙연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 1위라는 언론보도도 나오는데,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농특위 행사에서 5가지 농정전환 방향을 설명한 것과 관련해서도 혹평을 했다.

“대통령이 중심에 두는 것 중 농업과 농촌, 농민은 없다. 농정전환 5가지 과제도 어느 하나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다. 문재인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농정을 보면 답이 뻔히 보이지 않나. 농정에 지금까지 기대는커녕 실망만 했지만 진정 역사에 남길 농정과업을 완수하려면 마지막 기회로 농지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대통령 주변에 있는 측근들 말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주문도 했다. 이낙연 전 총리나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이나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전형적인 관료’라고 비판했다. 더 위에 누가 있는가에 따라 입장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이 중요하다.

2020년, 갈아엎어야 산다

2020년엔 선별적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할 참이다. “이 사회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구상하고 있다. 거의 마무리 단계다. 글을 쓴다면 창간 20주년을 맞는 <한국농정>에 쓰겠다.” 김 장관이 밝힌 소박한 계획이다.

“나이가 여든을 넘어 새해엔 여든 둘이다. 부담될 것도 없고 못할 말도 없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농업계 교수들도 제발 직언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존중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교수들이 뭐가 두려워 정부에 쓴 소리 한마디 못하나. 최근 글들을 읽어보면 실망스럽다. 학자로서의 소명의식, 자존심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 사회가 올바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그 하나의 원칙으로, 그에 도움 되는 일에 나서겠다.”

여전히 ‘지덕노체’가 쓰인 4H 목걸이를 걸고, 김성훈 장관은 “중학교 자격시험에서 전국 2등을 했다. 성적이 좋은 애들이 법대를 희망할 때 나는 농대에 간다고 썼다. 지덕노체 네잎 클로버의 행운을 농촌에 심겠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새해의 하루하루를 살겠노라 다짐했다. 지금 속도로 농촌이 소멸된다면 차기 대통령의 농업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새해엔 농업문제 갈아엎어보자”며 농지실태조사를 크게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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