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이 몇 명인지도 부정확한 ‘농업선진국’

  • 입력 2019.12.31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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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충남의 한 마을 관계자가 실제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수를 적어 마을 내 농민수당을 받는 이들의 수(가운데 표)와 비교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충남의 한 마을 관계자가 실제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수를 적어 마을 내 농민수당을 받는 이들의 수(가운데 표)와 비교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 통계는 농업·농촌·농민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기본적이면서 기초적인 자료다. 하지만 농업 통계의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된지 오래다. 매년 농산물 가격 폭락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더군다나 농촌을 지탱하는 농민에 대한 부정확한 통계는 정부 농정에 물음표를 낳게 한다. 농촌 현장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로 농업선진국을 선언한 정부를 낯설게만 보는 이유다.

실제 현실을 파악코자 충남의 한 농촌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충남도가 지난해 11월 15개 시·군의 마을 한 곳씩을 대상으로 농민수당 지급대상자 표본조사를 실시한 마을 중 하나다.

이 마을엔 25가구, 64명이 산다. 모든 가구가 농업에 종사하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실제로 농촌에 거주하고,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지원부와 농업경영체를 등록해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농업인’은 25가구의 세대주 25명이다. 이들이 농민수당 지급 대상자다.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농업인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농민’은 20명이다. 모두 여성이다. 이들은 공동경영주를 등록할 경우 추후 농민수당 지급 대상자가 될 수 있지만 현재 이 마을에서 공동경영주로 등록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이외에 ‘비농민’으로 볼 수 있는 학생이나 관외거주자는 18명이다. 조사 당시 관 주도가 아니라 마을 이장과 농민회원들이 세밀하게 조사를 진행한 터라 주민 통계가 비교적 정확한 편이라는 게 마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도 자신이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서의 지원금이 더 커 농업인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사례가 있다. 이는 통계에 구멍이 있음을 반증한다.

실제로 충남도가 15개 시·군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률이 낮거나 마을별 편차가 발생해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찾은 두 번째 마을에서 부정확한 농민 통계가 발생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관계자에 의하면 이 마을은 53가구, 1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일단 주민등록지가 이곳으로 돼 있지만 실제 거주하지 않는 주민도 통계에 잡혀 있다는 문제가 확인됐다. 농촌 인구가 줄면 지자체 예산이 줄 수 있어서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한 예전엔 농사를 많이 지었던 마을이지만 정부 정책으로 농지가 줄어 농민도 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귀촌인구가 늘었지만 주소지만 이 마을로 하거나, 주말에만 펜션처럼 오가는 경우도 있어 허수가 생길 여지도 있다.

일단 이 마을에서 ‘농업인’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은 농민수당을 받는 18명이다. 하지만 자격이 까다로운 지역농협의 조합원도 29명이나 돼 통계에 다소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농협 조합원의 경우 부부조합원이 포함된 까닭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게다가 이 마을에선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농업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농지원부를 임차인에게 넘기지 않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무려 10년간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 농지원부를 두고 농지 주인과 마찰을 겪는 걸 원치 않아 농업인 자격을 포기하고, 지역농협 조합원도 가입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이날 만난 마을 관계자들은 농민수당 지급 대상 심의를 예로 들어 마을단위심의위원회 구성을 부정확한 통계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행정에서 농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게 어렵지만 마을에선 농사짓는 사람인지 아닌지 다 알고 있다”며 “이장과 대동계장, 농촌지도자 등 마을 관계자로 마을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활성화하면 된다. 거기서 정한 기준을 행정이 존중하면 보다 정확한 통계가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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