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창경원⑦ “동물원도 북한보다는 넓어야지!”

  • 입력 2019.12.22 22:4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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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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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8년에 기공식의 삽을 떴던 과천의 서울대공원이,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에 완공되었다. 그해에 창경원의 모든 동물들을 서울대공원 내에 조성된 동물원으로 옮겨 수용하였다. 드디어 창경궁은 ‘동물원으로서의 75년의 욕된 세월’을 마감하고 옛 조선 궁궐의 지위를 되찾았다.

현재의 서울대공원은 전체면적이 240만 평인데, 그 중에서 88만 평을 동물원이 차지하고 있다. 옛 창경원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면적이다. 그런데 애당초 계획했던 동물원 부지가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70년대 말의 어느 날, 서울특별시청의 시장 집무실에서 창경원 동물과장 김정만이 시장과 마주 앉았다. 당시의 서울시장은 구자춘이었다.

-시장님, 기왕에 창경원이 협소해서 넓은 곳으로 이전을 할 바에는, 50년 아니 100년 후를 내다보고 면적을 획기적으로 넓게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보시오, 김 과장. 지금 창경원에서 동물원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1만8,000평이오. 그런데 새로 조성하는 과천 대공원에서는 순전히 동물원으로만 8만3,000평을 할애해주겠다지 않소. 창경원의 네 배가 넘는 면적인데, 자꾸 더 넓히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도 외국처럼 번듯한 규모의 동물원 하나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만 해도….

-아, 됐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8만3,000평도 너무 넓어요.

서울시장과의 담판이 수포로 돌아가자 김정만은 비상한 방법을 쓰기로 작정한다. 며칠 뒤 김정만은 비밀리에 청와대 쪽 인사를 만나서는, 대뜸 70만 평 정도는 돼야한다고 운을 뗐다. 청와대 관계자가 펄쩍 뛰었다. 이미 구자춘 시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8만3,000평으로 얘기가 끝난 터여서, 70만 평 운운했다가는 미친놈 취급 받기 딱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정만이 숨겨둔 카드를 꺼냈다.

-여기 자료를 좀 준비해 왔는데…. 이 자료 정도면 각하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서류봉투를 열어서 대충 훑어본 수석비서관이 반색을 했다.

-아이고, 이런 자료가 있었으면 진작 내놨어야지요.

아닌 게 아니라 얼마 뒤에 대통령 박정희의 특별 지시로,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원 면적은 애당초 계획했던 8만3,000평의 무려 열 배가 넘는 88만 평으로 결정됐다. 도대체 창경원 동물과장이던 김정만이 그 때 청와대에 내민 비장의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내게 들려준 얘기는 이러했다.

“북한 카드를 쓴 거지요, 내가 청와대에 들이민 자료는 다름 아닌 북한의 중앙동물원에 관한 정보였어요. 당시에 북한은 동독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평양의 대성동에 중앙동물원을 만들었는데 그 면적이 72만 평이나 됐어요. 그때가 반공을 국시로 삼던 유신시절 아닙니까. 남북이 극한으로 대치하고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하다못해 동물원의 면적을 놓고도 누가 누가 더 넓으냐, 그런 경쟁에서나마 북한에 지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계산을 했던 것인데…적중을 한 셈이지요, 덕분에 우리도 세계 어디 내놔도 자랑할 만한 널찍한 동물원을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허허허….”

1984년 4월에 과천 서울대공원이 개원하였고 동시에 동물원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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