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S 연착륙? 농촌 상황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

[2019 농업 결산]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제도 전면 시행 후 1년, 정부 발표와 상반된 현장 농민들의 평가
농약에 넣어도 살아남는 해충, 잔류 부적합 걸릴까 방제도 못해
대다수 농가, 생산량 감소 심각한데다 농약 혼입 우려까지 여전

  • 입력 2019.12.22 18:00
  • 수정 2019.12.22 23:04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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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전면 시행된 지 1년을 맞이한 가운데 연착륙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농민들은 PLS로 인한 생산량 감소 및 피해 등을 주장하며 관련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충북 영동의 참깨밭에서 한 농민이 농약을 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전면 시행된 지 1년을 맞이한 가운데 연착륙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농민들은 PLS로 인한 생산량 감소 및 피해 등을 주장하며 관련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충북 영동의 참깨밭에서 한 농민이 농약을 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현장 농민에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킨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어느덧 시행 1년을 맞았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를 비롯해 농촌진흥청(청장 김경규, 농진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노수현, 농관원) 등 관계기관에선 대개 안전성조사 결과 잔류농약 부적합률이 시행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제도의 안정적 연착륙을 확신하는 모양새지만, 대다수 농민들은 PLS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정부 입장과 매우 상반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선 농관원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달 30일 기준 742건의 안전성조사 결과 잔류농약 부적합률이 1.3%로 나타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안전성조사 856건의 잔류농약 부적합률은 1.3%였다. 관련해 농관원 담당자는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현장 중심의 사전예방 관리를 철저히 수행했고 시행 전·후 안전성조사 결과를 심층 분석해 부적합 발생을 예측·관리하는 등 제도 연착륙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반면 지난 16일 충북 영동군 양강면 일원에서 만난 농민들은 “정상적으로 출하된 농작물을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부적합률이 늘지 않은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면서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어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니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인근에서 사과·복숭아를 재배하는 박범서 남전2리 이장은 “우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소비하자는 PLS 도입 취지에는 아마 농민 모두가 동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를 시행할 때부터 농민과 전혀 준비가 안 된 농촌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며 “PLS 시행 이후 생산량이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쳐 당장 내년 농사가 걱정인데 이런 현장 상황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PLS가 안정적으로 연착륙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단언했다.

지난 16일 충북 영동군 양강면에서 만난 장시태 남전1리 이장이 저장창고에서 꺼내 보인 사과. 장 이장은 사과 아랫 부분의 벌레 흔적으로 전체 수확량의 대다수를 판매하지 못했다며 현실에 맞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 16일 충북 영동군 양강면에서 만난 장시태 남전1리 이장이 저장창고에서 꺼내 보인 사과. 장 이장은 사과 아랫 부분의 벌레 흔적으로 전체 수확량의 대다수를 판매하지 못했다며 현실에 맞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아울러 박 이장은 “벌레를 농약에 넣어도 살아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농약이 약해지고 약효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 같다”며 “PLS 시행 이전보다 농약 치는 횟수가 늘었고 약값도 더 많이 나갔다. 그런데도 병에 걸리거나 벌레 먹어 떨어지는 복숭아가 산처럼 쌓일 정도니 오히려 소득이 반으로 줄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또 장시태 남전1리 이장은 창고에 저장중인 사과를 꺼내 보여주며 “그냥 볼 땐 멀쩡하지만 밑 부분에 벌레 흔적이 남아있다. 상품성이 떨어지다 보니 100개 수확해서 판매할 걸 10개밖에 못 파는 지경이다”라며 “기후변화로 없던 병해충도 나타나고 병해충 발생 시기도 다양해지는데 안전성조사에서 잔류농약 부적합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방제를 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여전히 부족한 등록농약

농민들은 사용할 수 있는 등록농약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사과·복숭아를 비롯해 자두도 재배하고 있다는 장두섭 영동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자두의 경우 재배면적이 넓은 사과 등 주요 과수에 비해 등록농약이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업체에서 농약을 등록할 때 품목이나 병해충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소요된다고 들었다. 제도 시행과 더불어 땜질식 처방으로 농진청이 직권등록을 추진 중이지만 소면적 품목과 보편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병해충의 경우 여전히 방제할 약제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장 사무국장의 지적처럼 자두는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약정보사이트에 268개 농약이 등록돼 있는 반면 사과와 복숭아 등록농약은 각각 2,542개와 795개에 달한다.

또 장시태 이장은 “병해충도 저항성이 발현되고 내성이 생기다 보니 한 가지 약품으로 방제할 수 없는 상황이고, 농민들도 방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성분이 다른 여러 약제를 교차 살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업체와 농약 이름만 다르지 사실상 약제가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복숭아 등록농약 268개 중 농약의 품목명이 다른 경우는 117개며, 주성분 함량에 차이가 있는 농약은 112개로 확인됐다.

 

맞붙은 농경지, 혼입 해법은?

이밖에도 농민 대다수는 연접한 농지 및 방제기 사용으로 인한 농약 혼입과 그로 인한 피해 발생 가능성을 지적했다.

전우용 영동군농민회 감사는 “지금 재배 중인 사과만 보더라도 바로 옆 과수원 복숭아와 가지가 얽히고 설킨 상태다”라며 “과수뿐만 아니라 인접한 논·밭의 주인이 다른 경우가 전국에 얼마나 많은지 셀 수조차 없을 건데 이러한 경우 농약이 넘어와 안전성조사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면 생계가 달린 만큼 아무리 오래 부대끼고 살아온 동네 주민이라도 얼굴 붉히며 싸우는 사태로 번지기 십상이다. 결과적으로 제도 자체가 우리 영농 현장에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장시태 이장은 “영농교육에서 이런 문제를 문의했는데 지금 돌이켜 봐도 답변이 정말 기가 찰 정도였다”면서 “인접 농지에서 농약이 넘어오지 못하게 방충망을 치거나 바람이 안 불 때 농약을 살포하라는 대답이었다. 또 사과 방제 후 방제기를 세척한 뒤 복숭아 농약을 치라는 식으로 얘길 하는데 순간 농민들을 우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농민들은 최근 정부의 농업분야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사태를 언급하며 “실제 농촌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제도를 만들고 일방적으로 실시하게 강요하는 게 ‘선진국’ 정책인지 궁금하다”면서 “1차 산업을 홀대하는 선진국은 그 어디에도 없다. 농민이 잘 살아야 국민과 나라가 잘 산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제도 정비에 만전을 가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지난해 말 농식품부가 언급했듯 ‘교육·홍보에 초점을 맞춘 계도 중심의 PLS 이행 기간’이 끝나가는 만큼 부실한 제도 강행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에 농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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