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별 걱정을 다

  • 입력 2019.12.1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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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시장 개혁이 여전히 요원하다. 경매 수탁독점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공사)의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 시도가 농식품부의 반대 아래 10년째 헛돌고 있다. 최근엔 법률 개정을 통한 강제 도입까지 추진됐지만 역시 농식품부와 보수야당의 반대로 무산돼버렸다.

국정감사와 법안심사 과정에서 농식품부는 “공사보다 우리가 농민들의 이익을 더 생각한다”는 취지의 자신감을 보였다. 서울시 출자기관인 공사는 농식품부보다 농민에 대한 생각이 짧을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괜한 우려가 아닌가 싶다. 공사는 하루하루 농민 출하자들을 직접 접하는 위치에 있다. 경매시스템과 공사 관리업무의 특성상 소비자보다 출하자들과 압도적으로 많은 접점을 갖고 있다. 가격등락에도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실무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가격상승보다 가격하락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지금까지 정책의 민첩성을 살펴보면 농식품부는 아마도 가격하락보다 상승의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다. 또 부서명에 ‘식품’이 포함된 이래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자와 식품기업들의 눈치를 함께 봐야 하는 입장이다.

최근의 행보를 보면 더욱 명확하다. 공사는 품목별 생산자협의회를 만들어 공사 운영에 농민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한편,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농민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반면 농식품부는 올해 연쇄폭락 국면에서 철저하게 농민을 등지면서 불통행정의 정점을 찍었다. 가만있는 농민들까지 굳이 끌어들이려는 공사와 내미는 손길마저 뿌리치는 농식품부를 보면 “우리가 농민들을 더 생각한다”는 농식품부의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가 공사보다 농민들을 더 생각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것’과 실제로 ‘하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도매시장 문제를 자세히 알게 될수록 시장도매인제를 요구하는 농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농민들을 위하는 것이 과연 어느 쪽인지는 다름아닌 농민들이 직접 판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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