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매시장, 변하는 유통을 보고만 있을 건가
[인터뷰] 도매시장, 변하는 유통을 보고만 있을 건가
  • 권순창 기자
  • 승인 2019.12.1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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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장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산물 도매시장의 주 고객은 전통시장·중소형마트·영세식당 등으로, 그 존재 자체가 대기업 중심 유통체제에 대한 대항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매시장 경매제는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점차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강서시장은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 중 유일하게 청과부류에 시장도매인제를 운영하며 경매제의 대안을 개척하고 있는 곳이다. 강서시장 부지 선정과 설계 과정부터 함께했고 오랜 기간 강서시장의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노계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장을 만나 도매시장의 발전방향을 물어봤다.


 

노계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장
노계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장

도매시장에 변화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물류시스템 발전, 온라인시장 확대, 가정간편식시장 성장 등 유통환경은 무서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는 직거래, 소비자 니즈 반영, 물류비용 절감 등의 변화를 통해 가격·품질 경쟁력에서 우위를 갖추고 있다. ICT·빅데이터·블록체인 같은 미래기술 접목의 여지도 있다. 반면 도매시장은 경직된 경매제로 가격변동 폭이 심하고 적시·적가 공급이 어려우며 거래시간이나 물류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경매제가 유통정의 확립에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신성불가침처럼 그걸 고수하는 건 맞지 않다. 서구는 물론 우리가 모델로 삼은 일본 도매시장도 환경변화에 따라 거래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일본처럼 수집과 분산의 벽을 허물든지, 혹은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모두 일정한 영업실적을 충족하면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쿼터제라도 허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런 방법에 대해 한 번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도매인제는 현재의 농안법 안에서 도매시장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요긴한 제도다. 강서시장에서 시장도매인제를 운영해본 성과는 어떤가.

시장도매인제는 경매제와 달리 정부의 도움 없이 천덕꾸러기로 방치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설문조사 결과 출하자와 구매자의 만족도가 높고 한 번 거래를 해본 사람은 계속 거래하고 있다. 정부에선 아직도 비주류 취급하고 있는데 지금부터 이걸 더 제도화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산업 발전의 원동력은 선의의 경쟁이다. 이제 도매시장에도 다양한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정산조합으로 연대보증 체제가 갖춰져 과거 위탁상 시절처럼 돈 떼일 우려도 전혀 없고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가격을 후려친다는 얘기도 넌센스다.


경매 주체인 도매법인은 변화에 저항적인 입장인데.

어느 사회나 혁신을 하려면 기득권이 가진 걸 내려놔야 한다. 우리 유통에서 가장 리스크 없는 주체가 도매법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혜택을 받았으면 사실 도매법인들이 마켓컬리나 쿠팡 같은 대안적 유통을 제시했어야 했다. 도매법인의 운영수익이 대기업과 사모펀드의 수입원으로 전락해선 안된다. 막대한 수익을 재투자해서 현행 경매제가 가장 우수한 제도란 걸 입증하지 않을 거라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타협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경매제가 약화되면 영세 생산자 보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전국 도매시장에 농협 공판장이 있고, 농협이 하나로유통·홈쇼핑·로컬푸드 등 유통 전반에 손을 뻗고 있다. 영세 생산자 보호는 생산자단체인 농협이 주도해야 한다. 가락시장에 등록된 출하자가 50만명이지만 실제 출하하는 사람은 10만명이고 그 중 2만~3만명이 대부분을 출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세 생산자는 경매제든 시장도매인제든 출하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도매시장의 역할은 생산자·지자체·개설자 등이 출자한 공익형 도매법인 설립으로 고민해볼 수 있다. 대만의 공익형 도매법인은 수수료가 3%며 출하자가 1.5%만 내면 된다. 생산자·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보다 좋은 제도가 없다.


강서시장에서 향후 개선할 점이 있다면.

강서시장의 시장도매인은 과일에 강하지만 아직도 채소 쪽이 약하다. 채소를 좀더 확대해 구색을 맞추고 저온창고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며, 소분·가공과 B2B 사이버거래 등 기능도 확장해야 한다. 수출 역량을 갖추거나 친환경 마케팅 능력이 있는, 특화된 시장도매인도 필요하다. 블록체인과 핀테크, QR코드 등을 활용한 경매제 효율화도 고민하고 있다.

막대한 세금으로 지어진 공영도매시장은 저비용 고효율의 유통물류 고속도로로 재창조돼야 한다. 농민들의 든든한 출하처이자 주 고객인 골목상권·자영업자의 동반자가 되도록 유통인의 창조적 영업활동을 지원하고 유통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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