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망각의 역사

  • 입력 2019.12.15 18:00
  • 기자명 주영태(전북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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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태(전북 고창)
주영태(전북 고창)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나뭇잎 하나 없이 떨궈 낸 해묵은 고목의 우람함에 전봉준 장군과 농민군들의 결연한 위용이 보이는 듯하다.

공덕비에 쓰여진 관리들은 어떠했을까. 덕망 있는 관리였을까, 아니면 민초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였을까. 고목은 그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인간사 인간들이 해결하라는 듯 묵직하게 서 있다.

8.15 광복기념일에 토착왜구들은 창녕 조씨 고택에 ‘인촌사랑방’이라 현판을 달고 80여명의 노인들과 국회의원 정운천이 김성수의 생전 정신을 기리고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망발을 늘어놓았었다.

인촌로와 생가터, 새마을 공원에 동상도 버젓이 서 있고. 그 옆 마을에 서정주 또한 만만치 않은 놈인데 여전히 그를 추종하고 지자체의 막대한 자금을 들여 관리 감독하고 있다.

비참한 일이다.

대한독립을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몸은 물론이고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그들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민생고에만 급급하게 살아와 사회 가장 낮은 기층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라 팔아 부와 권력을 쥔 놈들은 대를 이어 가장 점잖은 지식인으로, 사업가로 떵떵거리고 살고 있고 옳은 말을 하면 그놈들로 인해 빨갱이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우리의 세금을 들여 친일파들이 미화되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장면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시고 군자금과 일본관공서 습격용 폭탄제조 및 총기 밀입과 위조지폐를 제조하시다 전남 장성에서 체포돼 옥살이를 치르시고 76세로 타계하신 송와 박영관 선생이 계시다.

생가터 복원사업이 고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취소돼 올해 들어 집주변 복원사업이랍시고 쥐꼬리만한 지원금이 나온 것이 고작이며 친일파들은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이정표가 집 앞 껄막까지 있는 반면, 박영관 선생의 생가터를 가리키는 이정표는 집 앞에나 가야 하나 서 있다.

김성수와 서정주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나라 팔고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대대로 호위호식하며 상류사회를 군림하는 놈들 청산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병폐이다.

그리고 비단 이것이 고창만의 문제는 당연 아니다. 전국 방방골골에 역사에 쓰여지지도 못하고 명예 회복되지 못한, 나라 독립 위해 산화하신 무명 독립운동가들이 한 조각 뼈조차 찾지 못하고 지하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육신은 찾지 못하더라도 이 나라 위해 몸 바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청산해야 한다. 토착왜구 세력과 사대굴종주의 적폐세력을 하루빨리 청산해내지 못해 작금의 나라 꼬라지 또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후세대들에게 이 나라 역사는 과연 어찌 비춰질까. 나라의 위기가 왔을 때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상상하기조차 심난하다.

대법원에서도 확정 판결한 친일파라고 했으면 그동안 축적한 모든 재산을 환수해 독립 위해 희생했던 풍비박산 난 독립운동가 집안을 되살리고 복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나라의 기강도 서고 선배영령과 구국 열사의 정신이 자손만대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친일했던 놈들이 그대로 친미로 이어지고 미국놈들에게 뜯기는 방위비를 이 나라 주권회복에 쓴다면 남과 북이 하나돼 부강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이 나라를 업신여기는 그 코 큰 놈들에게 당당한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주지나 않을까. 이것이 말이 아닌 현실로 되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고 실천해 나가야지 않을까. 지금 처한 우리의 삶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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