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식민지배 벗어나 토종벼 다양성 되살려야
밥상 식민지배 벗어나 토종벼 다양성 되살려야
  • 강선일 기자
  • 승인 2019.12.1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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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토종벼농부들, ‘토종벼 심포지엄’ 개최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7일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토종벼 심포지엄' 참가자들. 전국토종벼농부들 제공
지난 7일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토종벼 심포지엄' 참가자들. 전국토종벼농부들 제공

사라져가는 토종벼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이 모여 토종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의했다.

지난 7일 수원시 경기도의회 1층 대회의실에서 전국토종벼농부들(대표 이근이) 주최, 토종씨드림(대표 변현단) 주관으로 ‘토종벼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전국의 토종벼 재배농민들이 모여 각 지역 토종벼 품종을 소개하는 장이자, 토종벼의 복원을 위해 무엇을 할지 논의하는 장이었다.

원래 한반도에는 1,500여종의 토종벼가 자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며 대다수가 사라지게 됐다. 황의충 동네정미소 공동대표는 일제강점기 때 진행된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 과정에서 토종벼가 사라지게 됐다고 밝혔다. 일제는 식민지배 초기부터 조선총독부 산하에 권업모범장을 설치해 한반도 전역의 벼 품종을 수집·기록했다.

일제는 한반도 토종벼를 ‘생산성 떨어지는 품종’으로 치부하며, 생산량이 높은 대신 비료를 많이 써야하는 일본 벼품종 ‘와세신리키’, ‘다마니시키’, ‘가노메오’ 등으로 토종벼를 대체해 갔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1912년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2.8%에서만 자라던 일본 도입품종이 1920년 52.8%로 급증했고, 1930년대엔 토종벼 품종이 거의 사라지게 됐다는 게 황 대표의 설명이다.

해방 후에도 토종벼가 설 자리는 없었다. 장정희 경기도농업기술원 소득자원연구소 농업연구사에 따르면, 지금 우리 밥상을 지배 중인 품종 ‘추청’은 1955년 일본 아이치 현 농업시험장에서 만들어져 1969년 한국에 도입됐다. 이듬해인 1970년 정부에서 추청을 장려품종으로 선정해 국내에 보급했다. 또 다른 일본 품종 ‘고시히카리’는 1956년 일본 후쿠이 현 농업시험장에서 만들어져 2002년 한국에 도입돼, 토종벼를 대신해 우리 밥그릇 위에 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일본 벼 품종을 국산 품종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점이다. 우선 경기도에서부터 재배품종의 65%를 차지하는 추청·고시히카리를 2022년까지 0%로 만들겠다는 것. 그러나 대체품종으로 거론되는 ‘참드림(경기 5호)’도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권장 품종 ‘은방주’가 원종이라는 게 이근이 전국토종벼농부들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대한민국 우수품종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던 ‘영호진미’ 품종 또한 그 원류엔 ‘은방주’, ‘조일’ 등의 일본 품종이 자리잡고 있다.

이근이 대표의 경우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우보농장에서 토종벼 농사를 지으며 토종벼의 수집·보급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개인들의 주관적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민·관이 함께 토종벼 보급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현재 농촌진흥청 산하 유전자원센터에는 450여 품종의 토종벼가 잠들어 있다. 이 중 250여종 정도 복원됐으나 향후 더 많은 품종을 재배하려면 집단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가 차원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토종벼 확산을 위한 대안으로 △지역에 맞는 토종볍씨 나눔 △토종쌀 맛보기 워크숍 상시 개최 △토종쌀 막걸리 제조와 가공 확산 등을 거론했다. 토종벼의 보급 자체도 중요하나 1,500여종의 토종벼가 자랐던 각자의 ‘고향’으로 제대로 돌아가 토종벼의 다양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1,500여종의 토종벼들은 각각의 맛도 다른 만큼, 각 토종벼의 고향 귀환은 ‘밥맛의 다양성’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한 토종벼 재배농민들은 지속적으로 토종벼 시식평가 활동을 통해 한반도 토종벼의 맛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려왔다.

이는 토종쌀 막걸리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는 “1910년까지 우리나라 주막의 개수는 37만개였다. 각 마을 주막과 농가마다 막걸리를 빚었으며 그 개수만큼 다양한 막걸리가 존재했다”며 “토종벼 다양성을 근거로 누구나 막걸리를 빚어먹고 나눌 수 있다면 토종벼 확산에 큰 힘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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