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이제는 농민이 농정을 책임지겠다”

  • 입력 2019.12.15 18:00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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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정책위원장

 

올해 60세가 된 동네 아재가 허리수술을 하러 갔다 몇 달째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1년에 서너 차례 이어지는 동네 울력이면 예초기를 메고 시원하게 동네입구 풀을 베주던 아재였는데, 당장 내년부터 동네입구 풀이 자라도 70~80대 노인뿐인 동네라 풀 베줄 사람이 없어 동네가 지저분하게 생겼다.

무농약단지에서 농약검출이 되었단다. 단지에선 농약을 친 적이 없는데 원인을 찾아보니 조금 떨어진 건너편 논에 농약을 광역방제기로 하다 보니 멀리까지 날아온 것이다. 소규모 농가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운기로 농약을 했는데 이제는 힘에 부쳐 다들 광역방제기에 맡기는 신세가 되다보니 애먼 친환경 농가가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아기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농촌은 학교가 폐쇄되고 상점이 문 닫는 수준을 뛰어넘어 이제는 모든 면단위가 소멸될 위기에 처해 국민의 안정적인 식량생산에 경고등이 켜진지 오래다. 농민·농업·농촌이 죽어 가면, 농민이 죽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국민 전체가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건 아닌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수준의 문재인정부 농정 관료들이 농민을 위한답시고 한 일은 쌀에 대한 가격안정장치였던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휴경명령제라는 위헌적 개악안을 내세운 것이다. 스스로 WTO 개도국 지위를 벗어던지고 자기 손으로 방어막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짓까지 하고 있다. 수입쌀에 대해 국별 쿼터를 허용해 미국산 쌀이 쉽게 들어올 수 있게 길을 내주고, 밥쌀수입이 불가피하다며 협상을 해보기도 전 백기부터 내건 형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러한 모든 일들을 농민단체와 협의 한 번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차라리 농정에서 손을 떼라.

농업은 절대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되어서도 안 된다. 아이들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라는 말이 있다. 밥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국민의 식량자급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국가시책에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기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명목 하에 농업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펴왔고, 지금의 농촌의 몰락을 초래했다. 농산물은 기계에서 맘대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기에, 기후변화로 전세계 식량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국가먹거리 전략을 세워 농업을 획기적으로 살려낼 대책들을 전 부처가 달라붙어 강구해야 할 때인 것이다.

며칠 전 능주오일장에 나갔더니 농민수당으로 받은 지역상품권을 들고 동네 어르신들이 장을 보러왔다. 며칠 전 화순군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으로 지역상품권을 나눠준 후여서 각 상점마다 활기가 넘쳤던 것이다. 농민이 돈을 써야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지역주민이면 누구든 알고 있다.

더 이상 정부 관료들에게 농정을 맡겼다가는 온 국민이 다죽게 생겼다. 그리하여 농민들 스스로 농정을 살릴 방안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농민수당인 것이다. 내년 총선과제로 가장 먼저 농민수당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빨리 국가먹거리 전략을 수립하여 식량자급률을 높히고, 공공수급제등을 도입하여 국가가 먹거리 수급정책에 적극 개입하고,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쥐꼬리만한 직불금 인상으로 농민들을 희롱하지 말고, 최소 국가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농정예산을 확대 편성하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의 소박한 꿈은 농사만 지어서 최소한 생활을 유지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비싼 차나 보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밑지는 농사를 계속하면서 농외소득으로 버티는 생활을 계속하란 것인가. 농외소득까지 벌어내느라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여성농민들은 과도한 노동으로 몸이 망가져 모두가 스스로를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한다. 일하는 만큼 대우가 달라지지도 않았다. 어느 지역에선 마을이장을 뽑는 투표권이 1가구 1투표제라 남성중심의 농촌사회에서 여성들이 투표권마저 얻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내버려두고 젊은 층들의 유입을 바라는 것은 우물가서 숭늉 찾는 격이다. 모든 면단위 마을단위 교육에 성평등, 인권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1,000여명의 농민들이 2년째 목표가격을 정하지 못해 직무를 유기 중인 국회의원들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 엉뚱한 정책으로 농민에게 피해를 입히는 국회의원들에게 피해보상을 청구해야 한다.

내년 총선은 농민들 스스로 주인으로 나서서 일을 못하는 일꾼들은 잘라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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