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엄마라는 이름

  • 입력 2019.12.08 20:57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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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시급 1,000원짜리 노동, 건고구마순을 만들기 위한 노동이 쯔쯔가무시로 마무리됐다. 첫날 뭔가에 물린 느낌이었지만 싱싱한 순들을 서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속력을 냈다. 몸에 이상이 생긴다 해도 ‘곧 죽는 건 아닐 거야’ 자가 진단을 내린다. 미룰 수 없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다 죽는 사람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쿨하게 한마디 하며 지금 당장 입원을 권한다. 전남에서만 한해 1만명 정도가 이 진드기에 물려 병원을 찾는단다. 예방을 위해선 풀밭에 주저앉아 일을 하지 말라 한다. 엉덩이 방석을 끼고도 어쩔 땐 무릎으로 기어가며 때로는 땅 위에 털썩 주저앉아 일을 하는 농민에겐 발목관절이 아파 병원을 찾던 날 ‘쭈그리고 앉는 일을 피하세요’ 만큼이나 난감한 일이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천천히 쉬엄쉬엄 적당히 몸에 부치는 데로만 하면 되는 거야.”

딸에겐 늘 그리 말씀 하셨건만 정작 본인은 왜 이리 아등바등하는 것일까? 진드기에 물리고도 근 열흘을 혼자 앓아가며 일을 하다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르다 싶어 찾아온 병원이다.

“너 잘살라 그러는 거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꼭 그렇게 안 해도 돼! 엄마 욕심일 뿐이야.”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렇게 무심한 딸은 엄마의 가슴에 못을 하나 더했다.

이것저것 내 널린 일들이 눈에 선했을 것이다. 최소 열흘은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에 기운이 쭉 빠졌을 것이다. 이 와중에 온몸에 붙여놓은 파스 냄새는 진동을 한다. 눈이 따끔거릴 정도다.

이십대의 딸 셋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결혼도 ‘NO’란다. 나만 보면 “할머니께 잘해.” “엄마 아빠만 맨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잖아.”

불평등을 늘 입에 달고 살아왔던 아이들, 불편함을 굳이 감수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선언에 따로 할 말이 없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던 딸들과의 약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저리 키운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경제적인 이유도 결심의 하나이면…’ 엄마이기 때문일까? 차마 애들 앞에선 꺼내보지 못한 말이다.

어머니는 자장면을 싫어한다고 하셨지라고 시작하는 노래에서, 엄마는 늘 그래도 되는 것인 줄 알았다는 시 한 편까지, 가슴 저리는 수많은 표현의 단어들로 쓰여지는 엄마 못하겠단다. 지금껏 정상이라고 불러지는 것이 정작 차별과 불평등을 내면화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 테두리를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는 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엄마의 마음일까? 나도 그럼 그런 엄마 그만해야겠다.

모녀삼대가 ‘아웅다웅’ 한 이불 덮고 살아온 가족.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살아가는 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이어야만 정상으로 치부되는 사회, 그 안에 내가 있다.

비혼을 공식화한 딸들과 어떤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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