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87] EU는 하나일까

  • 입력 2019.12.08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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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U 국가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정말 한 나라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유독 생활 물가인 농산물 등 식료품 가격은 국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공산품의 경우 각국 조세 체계의 차이를 감안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 같다. EU는 주지하다시피 경제적인 측면에서 거의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다. 헝가리 등 몇 나라를 제외하면 화폐도 동일하고 노동의 이동도 자유로우며 상품의 교역도 자유롭다.

독일에서 생활한 지 5년여가 되는 딸 내외에 의하면 이곳에서의 농산물을 비롯한 식료품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유기농산물이나 유기가공식품의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다양해 생활하기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독일의 슈퍼마켓(ALDI)에 가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2019년 12월 기준 1kg당 사과 1,670원, 당근 770원, 파프리카 2,600원, 방울토마토 2,000원, 브로콜리 4,400원, 애호박 2,000원, 마늘 5,780원, 바나나 1,300원 정도다.

독일 이외의 EU 국가들은 어떨까.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식료품 가격이 대체로 좀 싼 편인 것 같다. 반면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 개발도상국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라는 것이다. 즉 개발도상국보다는 선진국의 농식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경험에 주로 기인한 것으로 객관적이거나 정확한 통계자료에 근거한 것은 아니며, EU 국가들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양분해 이분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역내 국가 간에는 거의 자유무역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농산물 및 식료품 가격은 동일하거나 비슷해야 이론에 부합한다.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가격이 비싼 나라는 가격이 싼 나라의 농식품을 수입하게 돼 국내 가격이 낮아지고, 가격이 싼 나라는 수출을 하게 돼 국내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결국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모든 국가의 가격은 평준화 된다는 것이 국제무역이론의 기초다. 그렇다면 거의 한 국가나 다름없는 EU 국가들의 농식품 가격은 동일하진 않더라도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왜 잘사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농식품 가격에 차이가 많이 날까. 그것은 아마도 농업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독일 등 선진국들은 보조금 등 직접지불금의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자국 농업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데 반해 개발도상국의 경우 농업에 대한 지원이 낮기 때문에 농업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 아닐까.

자국 농업이 취약해 수입 농식품 의존율이 높아질수록 국내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이 심해져 국내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의 농업을 유지하는 것이 개방화시대 가격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EU는 하나인 듯 하나 결코 하나일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EU 각국의 농업과 역내 무역실태를 보다 정교하게 분석해 보면 농산물 자유무역의 비현실성과 한계를 검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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