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경제인권, ‘지역상생푸드’로 재설계해야

  • 입력 2019.12.08 18:00
  • 기자명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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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차후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 쌀 등 국내 농업의 민감 분야를 최대한 보호할 것이며, 국내 농업에 영향이 발생할 경우 피해 보전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 등을 강구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국내 농산물의 수요 기반을 넓히고 수급 조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단위 로컬푸드 소비 기반 마련과 주요 채소류에 대한 가격 안정 정책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역단위 로컬푸드 소비 기반 마련은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과에서 추진하고 있다. 유통정책과는 주요 채소류의 대표가격을 형성하는 공영도매시장 유통도 담당한다. 다품종 소량생산 소농·가족농은 지역단위 로컬푸드직매장과 생산자가격제로, 단일품목 대량생산 중·대농은 공영도매시장과 경매제로 이원화해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경매제 낙수효과로 가락시장 가격이 로컬푸드 가격에 영향을 주고, 국내 농산물 생산과잉과 농산물 수입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관계시장과 일반시장의 이원화에 중소농이 공영도매시장의 공공출자법인 시장도매인과 직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 하나를 더해 삼원화한다면 유통경로의 다양화와 함께 공공시장을 더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제는 국내 농산물 생산 증가에 힘을 기울였다면, 오늘은 국내 농산물 소비 증가로 농업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생산자는 국민건강을 위해, 소비자는 농업 회생을 위해, 유통인은 공정경제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깔아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영도매시장이 위치한 소비지의 지방정부가 유통 및 소비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책임과 권한을 갖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아낌없이 지원해줘야 한다. 지방정부는 국내산 농산물 소비정책을 복지정책과 연결해 소비지 공공시장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이는 미래의 WTO 협상에 대응해 소비자가 나서서 우리 농업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소농과 가족농을 돕기 위해 지역상생교류사업단을 통해 매년 ‘농부의 시장’을 열고 있다. 전국 시·군에서 엄선해 추천한 약 220개 농가가 참여해 올해까지 82회를 개최했다. 또한, 주요 농산물 생산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할 때와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농가 피해가 발생할 경우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시·자치구 직거래 장터 개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의 장터판매 공간 지원, 구내식당 식재료 연계, 소비촉진 캠페인 외에 소비자 왕래가 잦은 사당·잠실·왕십리역, 상생상회 등지에서 판촉행사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온라인 등 심화되는 경쟁 상황 속에서 주민과 상인, 사회적경제 조직 등이 함께 어울려 지역 소비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생활상권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량생산, 가정간편식 등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우리 농산물을 주재료로 장인이 직접 만들고, 자녀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식품을 생산하려 한다. 게다가 가족, 친구들과 가고 싶은 동네가게를 발굴・홍보하는 ‘손수가게’ 운영 계획도 포함돼있다. 손수가게 발굴·홍보는 농업분야 사회적경제 조직이 지원하고, 손수가게 식재료는 가락시장에 공공출자법인을 설립해 공급한다면 보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생활상권 활성화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델이 ‘서울형 지역상생 로컬푸드’ 사업의 하나다.

정부와 서울시가 부지런히 정책을 펴고 있지만, 농촌의 소농·가족농과 도시의 청년·1인 가족은 굶주리고 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가장 굶주리고 있는 현실에서 ‘유엔농민권리선언’이 농민정책의 기조가 돼야 한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은 자연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영농제도를 발전시키거나 개혁함으로써 식량의 생산, 보존 및 분배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적절한 먹거리의 확보와 함께 그것이 가능한 생산체계와 분배체계를 갖추는 게 구조적으로 인권보호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도시의 서민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먹거리기본권’이 서민정책의 기본이 돼야 한다.

유엔농민권리선언과 먹거리기본권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경제인권’으로 귀결된다. 경제인권 관점에서 농촌과 도시에서 굶주림이 없도록 농업・먹거리 통합정책을 설계한다면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거리 체계가 보일 것이다. 또한, 지역단위 로컬푸드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지역상생 개념의 로컬푸드로 확장돼야 한다. 그래야 서울형 로컬푸드와 지역형 로컬푸드가 융합돼 국가 푸드플랜으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며, 차후 WTO 협상이 전개되는 양상과 상관없이 농업활력, 국민건강, 공정경제가 살아나는 살맛나는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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