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친환경 학교급식, 실상은 ‘친환경 진입금지’

학교급식 공급 친환경농가들의 농사과정

  • 입력 2019.12.01 18:00
  • 수정 2019.12.01 18:4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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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친환경농민들, 특히 과수농가와 채소농가들은 오늘도 온갖 병해충에 시달리면서도 ‘생태보전’과 ‘건강한 먹거리 공급’을 목적으로 친환경농사를 짓는다. 그 과정에서 학교급식에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성취도 이뤘으나, 아직 학교당국에선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진 않은 상태다. 때로는 반품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가에서 먼저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학교급식 공급 친환경농가들의 고충을 소개한다.

지난달 27일 천안시친환경생산자연합회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학교급식에 들어갈 친환경농산물을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천안시친환경생산자연합회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학교급식에 들어갈 친환경농산물을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유기농민들의 숙명, 병해충

“유기농사 지으면서 병해충 피해는 피할 수 없습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에서 유기농 배농사를 지어 천안시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박상진씨. 그는 자신의 배농사 과정을 설명하며, 아무리 농민들이 학교급식의 품위기준을 맞추려 해도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임을 지적했다.

“병해충 중 ‘병해’까진 어떻게 예방이 가능하다 해도 ‘충(蟲)’은 통제가 힘들다. 올해는 특히 깍지벌레와 심식충, 노린재 등이 많이 발생했다. 깍지벌레는 1년 내내 출몰했는데, 배에 달라붙어 과수를 빨아먹으면서 분비물을 발생시켜 배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나마 심식충의 경우 교미교란제가 나온 게 있어서 그걸 사용해 막긴 했지만…”

제일 큰 피해를 끼치는 건 노린재다. 박씨는 “표면에서만 활동하는 깍지벌레와 달리, 노린재는 배 속 깊은 곳까지 즙을 빨아먹어 과육 안쪽에 흠을 낸다”며 “다른 배는 몰라도 노린재가 빨아먹은 배는 사람들에게 먹지 말라고 권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어 “깍지벌레는 배 표면에 흠집은 내도 껍질만 깎아내면 먹어도 된다”고 설명했다.

노린재, 깍지벌레 등으로 인한 피해는 기후변화 과정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박씨 농장의 경우 올해 이 벌레들 때문에 전체 과수의 40%가 피해를 입었다. 벌레들 외에도 때때로 까치, 직박구리 등의 새들도 배를 먹으러 나타나는데, 새들이 파먹은 건 그냥 버릴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치지 않은 깨끗한 환경이라 새와 벌레들이 더 많이 나타난다.

깍지벌레의 경우 개미와 공생관계다. 개미는 깍지벌레의 배설물을 받아먹은 대가로 깍지벌레를 천적들로부터 지켜주고, 깍지벌레의 새끼들을 분산시켜 번식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과수원 내 개미집을 제거해야 깍지벌레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박씨는 개미집을 제거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유기농업이라고 하면 자연 그대로, 생태환경을 살리는 농업이라고 하지 않나. 개미들 사는 집까지 없애가며 배농사 짓는 게 유기농업 원칙과 맞는 건가 싶었다.”

현행 기준으론 친환경 포도농사 어렵다

경북 상주시 모동면에서 친환경 포도농사를 20년 넘게 짓고 있는 최준혁씨는 “지금 서울 학교급식을 관리하는 서울친환경유통공사에서 친환경농산물 관련 조달기준을 마련해 놨지만 이 기준이 그대로 학교에서 통용되지도 않을뿐더러, 이 기준대로 포도를 재배하려면 친환경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반 포도농가들의 경우 포도 알맹이 크기를 키우기 위해 지베렐린 등의 성장촉진제와 스트렙토마이신 등의 항생제를 투입한다. 최씨를 비롯한 친환경 포도농가들은 이러한 성장촉진제를 넣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문제는 성장촉진제를 넣지 않을 시 열과(裂果) 또는 과피 수축현상을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울시 친환경 학교급식의 ‘지속가능한 친환경 학교급식 조달기준’에선 친환경 포도 품위기준으로 ‘과피에 병해의 흔적이 적고, 열과 또는 과피 수축현상이 없는 것의 공급’, ‘미숙과·탈립과·착색장애과·쭈글쭈글한 송이의 출하금지’ 등을 규정한다.

최씨는 “농민들도 석회보르도액 등 친환경 약제로 방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걸로 열과와 과피 수축을 막긴 어렵다. 사실상 공산품 규격에 가까운 현행 급식체계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클레임, 그리고 자기검열

모 지역 학교급식지원센터 담당자의 카카오톡. 여기엔 날마다 쉴 새 없이 영양교사들로부터 직·간접적인 ‘클레임(물품에 대한 항의)’이 들어온다. “토마토가 푸릇푸릇하고 안 익어서 맛이 안 난다”, “깻잎 뒷면이 보라색이다. 반품하고 싶다” 등등 온갖 이유로 반품 요청이 들어온다. 해당 담당자는 그 문자들이 올 때마다 “품위기준에 어긋나는 게 아니기에 반품이 어렵다”, “반품하겠다” 등의 답장을 보낸다.

이러한 ‘클레임’은 학교급식 참여농가들로선 피할 수가 없다. 전북 남원시에서 친환경 배추를 재배하는 김동일씨는 남원 및 인근지역 학교급식에 배추를 공급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추 품위에 대해 ‘클레임’도 많이 받고 반품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벌레들이 배추를 뜯어먹어 생긴 구멍들 때문이다. 김씨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배추에 달라붙는 벌레들은 침투이행성 약을 치지 않으면 완전히 방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침투이행성 약은 친환경농가들은 절대 안 쓰는 농약이란 점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대다수 영양교사들은 배추에 구멍났다며 반품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부터 내가 먼저 구멍난 배추들을 걸러내 집에서 먹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 제공하겠다는 생각으로 농약도, 화학비료도 안 치고 농사지었는데 정작 그걸 학교엔 못 보내고 내가 먹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자기검열’이다. 학교에서 자주 반품당하다 보니 농민들이 먼저 ‘안 되겠다 싶은 것’을 걸러내야 했다. 이는 박상진씨도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창고 한쪽에 저장해 놓은 배들을 꺼냈다. 울퉁불퉁하지만 벌레 먹은 흔적은 없는 배, 벌레 먹은 흔적이 있지만 모양은 깔끔한 배, 노린재가 파먹은 흔적이 남은 배, 다른 문제는 없는데 농장 와이어에 걸려 패인 자국이 남은 배 등 각종 ‘자기검열’된 배들이 있었다.

“노린재가 먹은 배만 빼면 학교에서 먹어도 아무 문제없는 배들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먼저 안 되겠다 싶은 건 걸러내고 있다.” 박씨는 ‘노린재가 먹은 배’를 창고 옆 한쪽 구석에 던졌다. 그곳엔 노린재가 먹거나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 배들이 10여개 정도 쌓여 있었다.

끊겨버린 친환경기술 파이프라인

‘좋은 품위’를 위해선 친환경농업 신규기술이 농가들에 제대로 보급되기도 어려운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예컨대 천안시 농업기술센터의 경우 친환경농업 담당인력마저 따로 두지 않은 상태다. 대전광역시 또한 지역 내에 친환경농가들이 존재하고, 대전시에서 친환경 메기농법을 보급한다며 보도자료를 뿌리기도 했건만, 정작 친환경농업 전담인력이 없다. 농촌진흥청에서 보급하는 신규 친환경농업 기술이 각지의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보급되는데, 그런 면에서 인구 65만명의 천안시, 150만명 가까운 인구가 사는 대전시 등 적지 않은 지자체엔 친환경농업 기술보급 파이프라인마저 끊긴 셈이다.

정철기 천안시친환경생산자연합회 사무국장은 “농민들로선 친환경농업 기술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품위기준에 대한 논의구조 또한 정책당국의 조율 노력 부족으로 인해 쉽지 않다. 정부, 하다못해 광역지자체 차원에서라도 친환경 기술보급 구조와 품위기준 논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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