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농촌들이 공항에 목숨 거는 이유

[르포]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유치후보지 경북 의성군 비안면

  • 입력 2019.12.01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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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비안면 면소재지인 이두리에 걸린 현수막. 공항 유치는 찬성하면서 태양광발전소는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함께 걸린 것이 눈에 띈다. 군내 현수막은 대부분 파란 바탕에 기표 마크가 찍힌 형태로 통일돼 있다.
비안면 면소재지인 이두리에 걸린 현수막. 공항 유치는 찬성하면서 태양광발전소는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함께 걸린 것이 눈에 띈다. 군내 현수막은 대부분 파란 바탕에 기표 마크가 찍힌 형태로 통일돼 있다.

 

경북 상주에서 의성으로 접어드는 지방도로 들어서면, 도로와 마을 곳곳에 셀 수도 없이 걸린 대구경북권 통합신공항 유치 관련 현수막을 볼 수 있다. 현재 의성군과 군위군은 대구 북부에 위치한 대구국제공항을 이전·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이 현수막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시민단체나 마을의 이름으로 걸려있으면서도 그 양식이 통일돼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 알고 있던 의성군민 한 분에게 여쭤 본다. 여성농민 김윤미 씨는 “우리 면을 포함해서, 군내에 면 이름으로 유치결의대회를 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찬성여론을 지자체가 직접 주도하고 운동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일 거란 얘기다.

 

세비로 찬성여론 주도하는 지자체들

공항후보지는 군위군 우보면 단독 부지와 군위군 소보면·의성군 비안면 공동 부지 두 곳이다. 의성군은 올해 ‘시범마을조성과’를 새로 신설하고 과내에 공항유치팀과 공항지원팀을 뒀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한해 예산은 10억6,182만원이다. 공항 부지를 의성군과 나누지 않고 우보면에 단독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군위군도 이에 질세라 ‘공항추진단’을 만들고 올해 10억2,697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내용을 보면 ‘공항유치기획홍보’, ‘현수막 제작’, ‘주민상담소 운영’, ‘입간판 제작’ 등이다.

양 지자체에서 도합 20억원이 넘는 세비가 각 군내 공항 유치 ‘홍보’에 쓰였는데, 유치가 확정되지도 않은 공항을 위해 수십억원의 군비와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소멸 위기를 벗어나보고자 하는 두 지자체의 굳은 결심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점을 달리하면, 두 지자체와 사업을 주관하는 정부(국방부)가 어떻게든 합의안을 도출했다면 쓰지 않아도 됐을, 불필요한 비용에 지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곧 실패를 맛볼 둘 중 한 곳에 여러 가지 역효과와 부작용이 발생할 것 또한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또 군민들이 스스로 합의하고 드러내야할 여론에 지자체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도 피할 수 없다.

두 지자체가 군내 홍보에 이토록 열을 올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각 지역의 군민 찬성 비율로 공항 유치 여부를 확정짓기 때문이다. 최초 기획 당시 5곳이었던 대구경북권 통합신공항 유치 후보지가 의성군과 군위군 내 두 곳으로 좁혀진 이후, 최종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 방식을 놓고 지난 7월부터 반년 간 씨름해오다 결국 지난달 24일 투표 방식이 정해졌다.

의성군민은 공동후보지에 찬반 여부를 투표하고, 군위군민은 공동후보지와 단독후보지에 각각 찬반 여부를 투표한다. 주민투표 찬성률(1/2)과 투표참여율(1/2)을 점수화해 군위군 우보면이 높으면 단독후보지를, 군위군 소보면이나 의성군 비안면이 높으면 공동후보지로 최종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어차피 들어올 거라면 우리가”

여기서 이상한 점을 또 한 가지 찾을 수 있다. 찬성 비율이 더 높은 지역에 공항을 두겠다는 말은, 그 비율이 아무리 낮아도 이제 상대를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어느 곳에도 공항을 유치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이제 확정적으로 사라졌다. 두 지역 모두 공항을 원하는 군민과 그렇지 않은 군민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방부와 대구시는 공항 이전을 이미 확정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에선 지난달 27일 대구 북부와 경북 칠곡군 동명면을 잇는 광역도로 건설에 대한 예비타당성 심의가 통과되기도 했다. 이 도로는 신공항에 대한 접근성 확보 또한 염두에 두고 기획된 사업이다. 공항 이전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이제 0에 가까워졌다.

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 공항 유치 문제가 떠오르던 초기 의성군과 군위군 모두 찬반이 팽팽했지만 지자체가 본격적으로 여론에 개입하면서 반대의 목소리는 찬성으로 뒤바뀌거나, 혹은 낼 수 없게 돼 버렸다. 의성군에서 공항유치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신광진 의성군농민회장은 “주민 여론조사나 토론과정이 있었다 한들 공정할 리가 있나. 여론조사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면별로 유치대회를 열고 있는 게 군이 세금으로 하는 일”이라면서 “이쪽은 돈 없는 순수 군민, 농민들인데 저쪽은 관공서다. 게임이 안 되는 조직이다. 농민회야 그렇다 치고 다른 농민단체들은 자조금이나 지원사업 때문에 입도 못 여는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성군농민회는 투표일이 임박하면 미력하나마 차량 순회를 통해 반대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소신 있게 표를 던질 수 있도록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두 지자체가 함께 유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후보지간 거리가 너무 가까운 상황도 찬성 여론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공동유치 외엔 선택지가 없는 의성군은 별다른 소득도 없이 대형전투기가 내는 막대한 소음을 함께 떠안아야 하는, 보다 불리한 조건에 있다. 설령 스스로 원해서 공항을 들이지 않더라도, 그 결정에 대한 대가를 온전히 얻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항유치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성군 공동유치 후보지인 도암리의 코앞에 살고 있는 배백규 쌍계리 이장은 “처음에는 반대했는데, 어디에 들어오든 어차피 공항 때문에 피해를 받는다면 우리 지역에 유치해 지역발전을 노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찬성하는 것 말고는 딱히 도리가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비안면 곳곳을 지나며 만난 카센터 사장님, 슈퍼마켓 주인, 은퇴 공무원 등 비농업 종사자들은 지역발전과 불가피성을 이유로 통일된 찬성 의견을 내보인 것은 물론 농민들 또한 찬성의 목소리가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 유치 예정 부지에 인접한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들깨를 털고 있던 소점남(75) 할머니와 이연자(77) 할머니. 더는 농사짓는 것이 힘들어 공항이 들어오길 바란다고 말한다.
공항 유치 예정 부지에 인접한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들깨를 털고 있던 소점남(75) 할머니와 이연자(77) 할머니. 더는 농사짓는 것이 힘들어 공항이 들어오길 바란다고 말한다.

 

“어쨌든 농사는 희망 없으니까”

벼 추수가 끝나는 10월, 예정부지 도암리와 바로 인접한 2,000평짜리 들판에서 마주한 20여명의 비안면 농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너른 들판을 자랑해야 할 농촌이 콘크리트 활주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보여준다. 이날 만난 농민들이 전부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찬성 쪽의 인원이 더 많았고, 좀 더 힘이 있었다. ‘시니어클럽’ 조끼를 입고 들깨를 걷어 도리깨로 쳐 내는 작업이 한창인 현장에서, 작업반장을 맡은 농민 박진안(66)씨, 그리고 주변에 몰려든 동료들은 공항 얘기를 꺼내자 봇물 터지듯 말을 이어간다.

“일할 사람도 없고 젊은 사람도 없고, 알잖아요. 농사 지어가지고 이거 먹고살겠어요. 나도 원래 고향이라서 돌아온지 7년이지만 이건 뭐…. 인건비 올라가지 농약값 올라가지, 그렇다고 곡식이나 채소가 오르기나 해, 같이 따라 올라가야하는데 반도 못 올라가요.”

“공항이 오면 유동인구가 생기고 군인들도 오고 상인들도 오고 상가라도 생기겠지.”

“희망이 없어. 쌍계리는 (커서) 모르겠다만 (우리 마을 동부리는) 10년만 지나면 없어져. 내보다 젊은 사람이 10가구도 없어.”

“옛날엔 반대 현수막이 많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무슨 이유로 반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이 힘든 사람들은 다 바라고 있어.”

절망적인 농촌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를 품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도암리에 살아 공항이 들어오면 이주를 해야 할 소점남(75) 할머니와 이연자(77) 할머니는 아예 공항이 들어올 날만 기다린다. 이유는 ‘더 이상 이 힘든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있어서’였다.

공항이 지역을 소멸 위기에서 살리고 희망과 번영을 안겨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로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며 수많은 군민들이 자·타의로 만든 열망을 끌어안은 의성군과 군위군 중 한 곳은 이제 또 그만큼의 좌절을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고, 결국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군민의 몫일 터다. 한편으론 유치에 실패할 경우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악화일로를 걷게 될지도 모를 상황으로 지자체와 군민들을 몰아넣은 정부와 대구시의 접근법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아쉬움도 남는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유치에 사활을 건 두 지자체의 운명의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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