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트랙터로 봉쇄된 파리
농민 트랙터로 봉쇄된 파리
  • 한우준 기자
  • 승인 2019.12.01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업선진국은 지금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27일 주최 측 추산 1,000여대의 트랙터가 ‘마크롱(프랑스 대통령)은 응답하라’, ‘농민을 구하라’라는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앞에 내건 채 파리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를 약 하루 동안 봉쇄했다. 트랙터들이 가로막고 있는 도로 위 전광판에 ‘시위 진행 중’이라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농민 시위대는 이날 현지시각 오후 9시 45분 경 행정부와의 면담을 약속받고 물러났다. JA(프랑스 청년농민연합) 일드프랑스 지부 제공
지난달 27일 주최 측 추산 1,000여대의 트랙터가 ‘마크롱(프랑스 대통령)은 응답하라’, ‘농민을 구하라’라는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앞에 내건 채 파리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를 약 하루 동안 봉쇄했다. 트랙터들이 가로막고 있는 도로 위 전광판에 ‘시위 진행 중’이라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농민 시위대는 이날 현지시각 오후 9시 45분 경 행정부와의 면담을 약속받고 물러났다. JA(프랑스 청년농민연합) 일드프랑스 지부 제공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는 전국의 농민들이 몰고 나온 1,000대의 트랙터로 고속도로 진입이 봉쇄됐습니다. 수도로 진입하는 모든 주요 도로를 농민들이 막아 통행을 마비시킨 것이죠.

지난 2016년 말 정권 퇴진을 위해 우리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나왔던 그 시기, 도로를 동시에 달리는 트랙터의 수가 가장 많을 때조차 2~30대였던 걸 떠올리면, 그리고 그 정도 수로도 정말 대단했던 위용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규모입니다. 지난달 22일부터 농민들이 행동에 나선 독일에서도 베를린에만 5,000대, 독일 농무부가 위치한 본에 1,000대 등 총 8,000여대의 트랙터가 도시로 들어가 시내의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파리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은 EU와 남미경제공동체 메르코수르(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추진한 EU-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이 FTA는 협상만 20년을 끌다 지난 6월 겨우 체결에 양측이 합의했는데, 발효 이후 두 공동체는 10년에 걸쳐 모든 품목에 무관세를 적용하게 됩니다. 유럽 쪽은 자동차·의약품 등 제조업 분야에서, 메르코수르는 농업 분야에서 획기적인 수출실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양쪽을 합쳐 8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단일시장이 형성되기에 국제사회도 높은 관심을 보였죠.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수많은 나라들, 대표적으로 미국과 체결한 FTA의 조건과 매우 흡사합니다. 자동차 무관세를 얻는 대신 농축산물의 관세를 내줬죠. 첫 협상이 진행되던 2000년대 중반 우리 농민들은 여의도에서 엄청난 규모의 상경투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몇몇 농민이 희생되기도 했지만 결국 체결을 막을 수는 없었지요.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질 정도로 컸던 농민들의 분노는 얼마 전 있었던 2차 개정협상 때도 고스란히 살아있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최근 농약과 비료의 사용을 제한하도록 한 법안을 마련하는 등 농업에 대한 환경규제를 빠른 속도로 강화하고 있어(독일 시위의 경우 이쪽 이유가 더 컸습니다), 두 나라 농민들은 자국의 농업경쟁력 악화와 그에 따른 농업소득 감소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산물시장을 남미에 완전 개방하겠다고 나서니 농민들 입장에서는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청년농민단체 JA(청년농민연합)와 함께 지난 10월부터 연속된 세 번의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 최대의 농민단체 FNSEA(La Fédération Nationale des Syndicats d’Exploitants Agricoles, 전국농업경영인총연맹)는 “이제 거의 20%에 이르는 농민들이 스스로의 판로로 생계를 꾸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JA의 사무엘 반델레 회장은 지난 7월 FTA 타결 직후 낸 칼럼에서 ‘우리는 여전히 가족농을 원하고 있나?’라고 반문합니다. 그는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가족농’은 지역에 가치를 가져다주고, 소비자로 하여금 기준에 맞는 양질의 농산물을 누리게 한다”면서 “여전히 프랑스와 유럽에 젊은 농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에 대한 대안인 가족농업이 책임감 있는 정치인들에 의해 지켜지리라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전문을 읽어보면, 다국적기업의 농장 역할로 유명한 남미에서 들어올 값싼 농산물들이 먹거리 안전과 가족농을 파괴할 거란 우려로 가득합니다.

한편 (상대적으로) 도덕과 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EU의 각국 정부들은 아마존에서의 삼림 파괴가 멎지 않을 경우 체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속속 내보이고 있어 EU-메르코수르 FTA 앞날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농민들의 이 강력한 시위가 새로운 국면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