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생 여성농민을 응원한다

  • 입력 2019.11.24 18:5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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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 여성농민이 있다. 1983년생. 세 아이의 엄마다. 매일 새벽 5시 반, 집 인근 축사에서 소밥 주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친정아버지와 자신이 기르는 소 30여 마리에 사료와 지푸라기를 주는 일이다. 축사 청소는 기본. 한 시간여 남짓 이어진 작업에 사방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먼동이 트자 장소를 옮긴다. 밭일이다. 친정엄마와 함께 양파 모종을 심기 위해 밭에 검은 비닐을 덮는다. 괭이로 흙을 퍼 올려 비닐을 고정시킨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출근한다. 농업소득으로만 농촌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 사실, 불가능하다. 작년 우리나라 평균 농업소득은 1,3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령기의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젊은 부부에겐 남편의 재취업은 농촌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이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재취업 이후 새벽 출근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신 잘 다녀오라며 짧은 인사를 건넨다.

어느덧 아이들 등교, 등원 시간이다. 스쿨버스가 오는 시각은 8시 반. 8시까지도 이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과 씨름 아닌 씨름을 하는 건 오롯이 여성농민의 몫이다. 어르고 달래며 귀리를 섞은 우유를 챙기고 옷을 입히고 과제물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스쿨버스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면 그제야 아침밥 한 술을 뜬다.

오전엔 인근의 여성농민 선배들과 농산물 제철꾸러미 택배 발송 작업에 나섰다. 60~70대 여성농민들 사이에서 유일한 30대 여성농민이라 소비자의 주문을 받고 소식지를 만들고 일을 배분하는 것 모두 그녀의 몫이다. 모임에서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일이 몰려들기도 한다. 농촌의 고령화를 절절하게 피부로 느끼는 셈이다.

이후에도 로컬푸드 입점교육, 아이들 학원 등원 및 집으로 데려오기, 저녁 소밥 주기, 농산물 가공품 포장하기 등 그녀에게 일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맡겨진 일 모두가 허투루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록 계절은 농한기여도 그녀의 삶은 절대 농한기일 수가 없었다.

상투적이게도 만약을 들어 질문을 했다. “지금 당장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고 싶은 일은?” 답변이 금세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 홀로 어디든 도보여행이라도 다녀 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녀의 삶을 모든 젊은 여성농민의 삶으로 일반화할 순 없다. 허나, 시·공간은 다를지언정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 오늘도 충실했을 83년생 그녀를, 여성농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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