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선운사에서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다
[농민칼럼] 선운사에서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다
  • 강선희(경남 합천)
  • 승인 2019.11.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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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경남 합천)
강선희(경남 합천)

2018년 작년 이맘때 마늘과 양파를 심어놓고 마늘·양파농가가 모이면 2019년 마늘·양파가격을 걱정했다. 농민들도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이 심어졌다는 것을.

가격폭락을 걱정하면서도 겨울 동해(凍害)를 걱정하며 부직포와 이중비닐을 했고 봄 장마에 습해를 입을까 마늘·양파 논에 관리기로 몇 번이나 물꼬를 내줬다. 이런 농민들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몇 년 만에 따뜻한 겨울 날씨로 풍년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하늘은 농민들의 고생에 좋은 날씨로 답을 줬는데 이 나라 정부는 현장농민들의 소리를 내몰라라 하며 사전 수급조절 실패로 농민들에게 최악의 가격을 안겨줬다.

새빠지게 지은 양파와 마늘을 부둥켜안고 죽고 싶은 심정을 추슬러 농민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자주적 생산자조직인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전국마늘생산자협회를 만들었다. 

농산물 값은 농민 값이다.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만들어가자,

이제 우리가 농산물 수급조절에 직접 나서자,

농산물 가격결정권을 생산자인 농민이 가지자,

현장에서 나온 농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자 협회 간부들이 발바닥에 땀나듯이 뛰어다녔고 굳어버린 머리로 수급정책, 가격정책을 공부하고 협회 이사들과 밤새 토론하며 대안을 찾고자 했다. 양파·마늘 주산지 농민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녔고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 서울 상경집회 등 많은 일을 했다. 

지금에서야 솔직하게 나의 속내를 이야기하자면 생산자조직은 농민회와 다르다고 생각했고 일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고 가격이 폭락하면 파종 전까지는 대정부 투쟁 등 사업이 있지만 농번기에 접어들면 별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대강 한발만 걸치려고 했다.

이런 내 생각은 농식품부 관료들과 한 치의 차이가 없었다. ‘농민들은 농번기가 되면 가격이 폭락했더라도 다 잊어버리고 다시 생산현장으로 돌아가니 그때까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 하자’는 관료들의 생각을 비난했지만 나 또한 막상 협회일이 나의 일로 닥치니 내가 욕하던 관료들과 같이 농민들을 바라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낯이 뜨겁고 부끄럽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투쟁을 해도 양파와 마늘 가격은 계속 내림세였지만 농민들의 기세는 점점 올랐고 조직화에도 속도가 붙었다. 무안에서 함평에서 고령에서 태안에서 제주에서 단양에서 의성에서 부안에서 전국 곳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농민들의 자주성은 협회 집행부가 감당하기에 버겁고 무거웠고 심지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겁까지 났다.

그러나 협회를 만드는 과정에 보석 같은 간부들이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지역을 책임졌고 인근 면까지 찾아가서 같이 생산자조직을 만들자고 이야기하며 다니고 있었다. 우리에게 던져진 아주 어려운 숙제를 하기 위해 양파협회 간부수련회를 선운사 유스호스텔에서 가졌다.

올해 생산자협회의 목표는 회원을 확대하고 면단위까지 조직을 꾸리고 우리 내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가 단단해진 다음 정부의 농산물 수급정책에 농민의 목소리를 담고 최저생산비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농사를 지속적으로 지을 수 있도록 농업정책을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였다.

그런데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농식품부에서는 마늘·양파 수급정책을 위해 의무자조금이라는 사업을 내놓았다. 마늘·양파의무자조금 사업은 9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분과토론회에서 처음 제안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농민에게 의무자조금은 내가 짓는 농사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고 주변에서 자조금은 소나 돼지, 낙농을 하는 축산농가들이 가입해 있다는 정도이다. 또한 한우 시식회나 한돈 소비홍보 광고 등을 통해서 자조금에 대해 아는 정도이다.

자조금을 내고 있는 농민들조차 자조금이 농산물 수급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돼지나 소를 도축할 때 한 마리당 얼마씩 내고 이 돈으로 자조금협회 직원 월급 주고 TV광고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만큼 자조금이 농민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진행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양파·마늘 의무자조금단체를 만들어 수급조절을 하자고 하니 머리에 김이 나고 어렵다. 또한 농식품부에 대한 불신이 이미 깊은 농민들은 의무자조금 만들어 농식품부는 뒤로 빠지고 농협과 농민들에게 농산물수급정책의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조라는 의미는 스스로 돕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농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제도라면 언제든지 찬성이다. 그런데 현행 의무자조금법에는 농민들의 자율성은 없고 농식품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의무규정만 가득 있다.

마늘·양파 자조금제도가 진정한 농산물 수급정책으로 자리잡으려면 현행 자조금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한 지금과 같은 마늘·양파 유통체계로는 자조금 거출 또한 쉽지 않다. 따라서 농협을 통한 50%이상 계약재배로 계통출하를 하고 생산자협회 의무가입으로 생산자가 중심이 되는 자조금이 될 때에만 이름에 걸맞는 자조금이 될 것이다.

많은 농민활동가들이 걱정과 우려,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운사에 모인 양파생산농민들도 주변에서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깊은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의무자조금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나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고 여럿이 함께 만들어 가는 길이어서 조금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생산자가 주인이 되는 자조금을 꼭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선운사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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