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농민 따라, 함께 사라진 농촌 재래시장

[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⑩

  • 입력 2019.11.24 18:00
  • 수정 2019.11.24 19:1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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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이월장이 없어진 지금, 관지미에서 가장 가까운 장은 인근 광혜원면의 장터입니다. 이날 장에선 이문환·이복례씨 부부가 상인이 아닌 농민으로선 유일하게 직접 농사지은 김장채소를 팔고 있었습니다.
이월장이 없어진 지금, 관지미에서 가장 가까운 장은 인근 광혜원면의 장터입니다. 이날 장에선 이문환·이복례씨 부부가 상인이 아닌 농민으로선 유일하게 직접 농사지은 김장채소를 팔고 있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이번에도 다시 농촌 역사공부입니다. 요즘 ‘푸드플랜’을 한다면서 여기저기 로컬푸드 매장이 많이 생기고 있지요. 판로와 농산물 가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농촌 현실을 인지한 정책인데, 사실 오래 전 농촌의 재래시장이 수행했던 기능 중 하나를 되살리려는 시도입니다. 안타깝게도 농촌 재래시장은 정주 인구 감소로 인해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는데요, 어쩌면 곧, 다시는 볼 수 없을 농촌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담아봤습니다.

지금은 ‘초보’의 수준을 벗어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지금보다 더 미숙했던 초보 기자 시절 ‘로컬푸드’로 유명한 한 농촌에서 농협 직매장에 배추와 고구마 등을 납품하는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배추는 캐는 족족 그날 바로 매장에 들어가는데 매대는 몇 시간이 지나면 곧 비곤 했습니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시중보다 싸게 가격을 붙일 수 있고, 가격을 마주한 소비자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발 멀리 떨어져 그림을 보니, 그렇게 농산물을 팔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물론 노력이 깃든)행운, 혹은 축복이었습니다. 매장에서 팔고 있는 농산물들은 작물마다 각각 담당 생산자가 한 명 혹은 두 명에 불과했습니다. 아직은 아주 소수의 농민만 로컬푸드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급격한 인구 감소로 농촌 지역의 먹거리 구매력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수준까지 곤두박질쳤고, 이제 대부분의 농산물은 도시로 갑니다. 이 과정에서 복잡한 유통 구조를 거치기 때문에 농민들은 오늘날 농가소득을 지켜내기가 더욱 어렵게 됐습니다. 최근 ‘푸드플랜’이니 뭐니 하며 계획적으로 지역 농산물의 생산과 인근의 소비체계를 연동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사실 이전엔 농촌에 대부분의 면마다 5일에 한번 열리는 전통시장이 있어, 농민들은 이곳에서 농산물을 팔고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한편 다른 마을에서 온 농민들, 그리고 곳곳의 장을 돌아다니며 지역을 잇는 이동상인들과 정보를 나누며 서로 교류하곤 했습니다. 시장은 마을 단위를 넘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죠. 이쯤에서 관지미 역사의 산 증인, ‘그것도 모르지?’ 신옥순 할머니를 찾아 그 시절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콩이고 팥이고, 무조건 장에 갖다 팔고 돈을 맨들어야 쓸 거 사서 쓰지. 그 때는 무조건 시장에 갖다 팔아야 살았어. 그 때는 차가 있어, 뭐가 있어. 돈 벌려면 지고 걸어가서 자리 깔고 팔았지. 광혜원이 여기서 20린데 걸어 댕기고. 쌀도.”

“쌀도? 무거운데요?”

“아이고, 키울 때 비료 같은 것도 어깨로 지고서 줘, 다 크면 벼를 비어(베어), 비어 놨으면 한쪽은 안 말랐으니까 또 뒤집어. 근데 비가 와서 맞으면 또 뒤집어. 난 일곱 번도 뒤집어 봤네. 와랑 알아, 와랑? 그것도 모르지? 발로 밟고 막 돌아가는 걸로다가 털어. 그리고…”

벼를 시장에 가지고 가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엄청난 노고들이, 할머니의 느린 말로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할머니는 자신이 주로 다닌 이월장은 이제 없고, 몇몇이 다시 기를 쓰고 살려보려 하지만 잘 안된다고 혀를 찹니다.

소농들이 농촌을 떠나고 남은 농민들은 고령화된 오늘날엔 곧 사라질 농촌의 과거가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제 북적이는 시장의 모습은 오히려 상설로 전통시장을 여는 도시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풍경이 됐지요.

할머니 말씀대로 사당리 관지미를 품은 이월면도 본래 송림리에 매월 1일과 6일에 열리는 이월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으레 군마다 읍에 있는 가장 큰 시장(진천장)을 제외하면, 진천에서는 사실상 광혜원면의 장터만이 5일장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월 3일과 8일에 열리는 광혜원장(옛이름 만승장)의 오늘날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50m도 채 안 되는 길에서 열댓 명의 상인이 농산물과 수산물, 옷가지를 팔고 있는 것이 전부였죠. 그저 장터 인근에 빼곡히 들어찬, 그러나 대부분은 문을 열지 않은 식당과 유흥주점들의 낡은 간판들로부터 한 때 이곳이 유통과 외식, 소통의 장소를 제공했던 지역의 중심이었음을 겨우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배추 하나에 얼마유?”

“한 포기에 삼천원. 여럿 사시면 좀 싸게 해드리지.”

이날 장에선 사당리 아래 신월리에서 농사짓는 이문환·이복련(67) 부부가 배추·파·알타리·오이 등 직접 농사지은 김장채소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도시 나갔다 돌아온 아들 둘과 함께 농사짓는 가족농입니다. 주로 밭과 하우스에서 농사짓는데, 시장에 나와 물건을 판지 벌써 40년이 됐다고 합니다. 이날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 중 상인이 아닌 농민은 부부가 유일했습니다.

“농사 지어가지고 팔고, 겨울에는 안 나오고. 그 때도 혹 농사지은 거 있으면 파는 거고.”

“농사지을 때는 아줌마 해갖고 같이 댕기고. 외국 사람들 없으면 농사 못 지어.”

외국인노동자 한 명과 함께 산더미 같은 김장 채소를 손질하고 있던 이문환씨는 제가 이월면을 다닌다고 하니 ‘뭐 하러 다니나’ 꽤 궁금한 눈치였습니다. 관지미 이장님 댁도 알고 계시기에 최근 이장님 댁의 멜론 수확을 비롯해 관지미 그리고 전국을 다니며 기록한 내용들을 소재로 농사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밭농사는 주로 여기서 팔고, 오이는 가락동 경매장으로 가. 지은 물건이 많으면 대전도 좀 가고, 청주도 가고.”

당연히 사는 이월에도 장이 있었지만 사라진 지 오래라며, 부부는 씁쓸히 이곳 사정도 이야기합니다.

“지금도 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잘 안 모이지. 지역에 사람 숫자가 많아야 시장이 형성되는데, 자체적으로 인구가 없으니께.”

“여기도 이제 안 되지, 많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고.”

지금껏 남아 시장을 지키는 이씨 부부처럼, 이곳을 드나드는 이동상인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소지가 평택이라는 한 상인은 천안의 도매시장에서 농산물을 구입해 이곳에서 파는데, 장사를 오래 해 나이도 먹었고 이제 다른 걸 할 수도 없으니, 아직 장이 없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나마 광혜원면에는 공업단지가 있어 아파트도 조금 있고 인구가 들어왔기에 아직은 버티고 있다고 하네요.

“예전보다는 장사가 안 되죠. 마트도 훨씬 많이 생겼고. 요즘은 나와서 장을 안 보고 집에서 장을 보잖아요. 근데 나이도 먹었고 다른 걸 할 수 없잖아. 배운 게 없는데.”

지금 농민들이 콤바인을 쓸 수 없다면 아마 대부분은 벼 베는 것 자체를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재래시장 역시 결국 훨씬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현대식 슈퍼마켓을 이길 수는 없겠죠.

하지만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시장이 유통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기능을 품어 왔고, 그래서 아직까지 시장이 존재한다는 건 ‘여전히 활력이 도는 고장’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내건 것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지방소멸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생기를 가진 땅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체감하니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네요.

매 3일, 8일에 열리는 광혜원장. 사진에 나온 풍경이 시장 공간의 거의 전부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작고 한산했습니다.
매 3일, 8일에 열리는 광혜원장. 사진에 나온 풍경이 시장 공간의 거의 전부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작고 한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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