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86] 1차 산업 유기농부

  • 입력 2019.11.24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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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며칠 전 아침 8시 정각, 바퀴달린 대형 포크레인이 과수원에 도착했다. 과수원 리모델링을 위해서다. 1년 동안의 심사숙고 끝에 내년부터 사과품종과 재배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귀농 4년 동안 미니사과 알프스 오토메를 재배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호밀을 이용해서 땅심을 높이는 방법, 밀식재배를 위한 정지·전정 작업, 유기약제인 석회보르도액·자닮유황·자닮오일·백두옹 등 천연 살균·충제 제조 및 살포방법, 풀 관리 방법 등이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 오리무중인 것 같다.

4년 전 내가 선택한 사과농사는 작은 면적에 나무를 많이 식재해 생산성을 제고시키는 밀식재배 농법으로, 방제를 철저히 해야 하고 영양공급도 잘 해줘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사과농장에서 행하는 재배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밀식재배는 수고가 4미터 내외로 너무 높아 전지나 수확작업을 위해선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므로 위험하고 힘들었다. 물론 수직상하차가 있으면 되겠지만 작은 과수원에선 과잉투자란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과수농사는 영농기술이라고는 전혀 없는 왕초보 농부가 할 수 있는 농사가 아닌 것 같다. 홍천군 귀농·귀촌 길잡이 책자에 의하면 ‘영농기술이 없는 초보자는 사과·배·복숭아·포도 등 과수농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안내하고 있다. 4년 전 작목 선정 시 이를 간과했다는 것을 4년여가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무를 심으면 밭농사보다는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러나 과수농사는 결코 쉽지 않고 일이 적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더욱이 그 어렵다는 친환경 과수농사는 애당초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시도였음을 지금에서야 조금 깨닫고 있다.

4년여의 시행착오를 경험으로 유기농 사과농사에 재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미니사과가 아닌 일반 크기의 사과 ‘시나노골드’와 ‘돌체’가 어떨까 해 묘목을 알아보고 있다. 내가 얻은 결론은 미니사과라고해서 유기농이 쉽고 일반사과라고 해서 유기농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은 사과나 큰 사과나 유기농으로 키우기는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반사과를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 벌레가 먹더라도 내가 먹을 것이 조금은 남아있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다음엔 1.5×3m 간격의 밀식재배 대신 5×6m 간격으로 넓게 식재하기로 했다. 최근엔 거의 사라진 재래방식이지만 보다 자연에 가까운 재배법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키를 키우는 게 아니라 Y자로 벌려 키를 낮추는 대신 옆으로 키우는 방식이다. 사다리나 수직상하차를 타지 않고도 작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과수원 고랑의 풀 관리가 여의치 않아 예초작업이 힘들었음을 고려해 이번에는 클로버를 파종해 기르기로 했다. 클로버는 생육이 왕성해 일단 자리를 잡으면 다른 잡초가 잘 자라지 못하고, 콩과식물이라 질소고정 작업도 해주니 토양에도 유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에서는 생산·가공·유통·관광 등 1·2·3차 산업을 연계한 6차 산업을 농민들에게 강권하고 있으나 1차 생산조차도 이렇게 어려우니 내게는 머나먼 남의 일인 듯 싶다. 그래도 내년부터는 심기일전해 유기농 생산만이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1차 산업 유기농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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