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농촌의 근간은 여성농민 … 농촌도 정책도 인식을 바꾸자”

오미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 과장

  • 입력 2019.11.2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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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에 개방직으로 채용된 오미란 과장은 여성농민단체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는, 농촌 성평등 운동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여성농민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 한계를 극복하려 한 농식품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농촌 여성정책을 최전선에서 설계하고 있는 오 과장을 만나 여성농민들이 처한 현실과 정책적 고민에 대해 들어봤다.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오미란 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 과장
오미란 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 과장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농민의 절반은 여성농민이다. 농촌에서 실제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논농사는 95% 기계화됐지만 밭은 사람 손이 필요하다. 그걸 누가 하겠나. 농촌에선 남성은 서서 하거나 힘쓰는 일로, 여성은 엎드려 도구를 활용하는 일로 역할구분이 지어져 있다. 여성들의 노동이 더 고되고 통증을 유발함에도 가치평가는 낮게 돼 있다.

농사일뿐 아니라 마을 일도 대개 여성농민의 몫이다. 마을복지는 여성농민의 봉사와 희생으로 유지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노동이든 마을공동체 유지 측면이든 여성농민의 공익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농민들이 삶 전반에서 차별받고 소외되는 정도가 도시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

차별 이전에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분명 남성들과 다르다. 가령 밭일 하다 화장실 가는 것도 남자는 아무데나 볼일을 봐도 되지만, 여자는 풀밭에서 볼일을 보는 게 위험할 수 있다. 기본적 욕구와 관련된 가림막 화장실 하나가 없다. 여성의 노동조건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또 남자는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손씻고 티비 보는게 전부지만 여성농민들은 나가기 전에도 집단속을 하고, 나가서 일하고, 집에 들고 온 걸 또 손질해야 하고, 가사노동도 해야 한다. 노동시간이 훨씬 더 길다.

농촌은 남자들의 생각도 안 바뀌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들의 생각도 안 바뀐다. 마을에서 일할 때 자연스럽게 남자 어른들을 챙겨줘야 하고, 남편이 일하고 있으면 부인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이장선거에서도 ‘가구당 1표’씩이 주어지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정책적 소외도 문제인 것 같다.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여성농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전체 농업정책에서 성별의 요구와 처지가 다르다는 걸 인식하는 게 더 중요하다. 부임 후 우리 부서와 타 부서, 관련 단체, 연구자, 농협, 기관들과 워크숍·간담회를 하며 포괄적으로 사업들을 바꿔가려 하고 있다. 우리 부서(농촌여성정책팀)의 정책은 아주 작고 나머지 농업정책이 90%다. 우리 부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정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 본다.

한편으론 공동경영주 등록제가 만들어져 있는데 여성농민들이 등록을 잘 안한다. 홍보 문제도 있고 여성농민 스스로 주체가 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본인 스스로 농업에서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챙겨나가려 해야 한다.


정책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인식을 바꾸려면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MOU를 통해 농촌형 강사 프로그램과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성 불평등 현상이 달라서 농촌에 맞는 컨텐츠를 발굴해 교육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농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강소농교육에 성평등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합의하고 있고 여성농민 스스로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전문 강사단 육성도 추진 중이며, 공무원 교육에도 여성농민정책 이해과정을 신설했다.


여성농민의 사회참여 제한 등 뿌리깊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키맨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인지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농촌의 키맨이 돼야 한다. 농협 및 단체 임원 등 농촌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양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해 인식을 바꾸고, 여성 스스로도 임원에 진출하기 위한 훈련을 했으면 한다.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고 리더쉽 있는 인력을 육성하는 일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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