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3년 만에 아스팔트 내달린 농민의 트랙터

농업인의 날 각지서 ‘아스팔트 농사’ … “문재인농정 갈아엎어야”
트랙터 앞세워 시내 행진하며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 등 요구

  • 입력 2019.11.17 18:2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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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농업인의 날인 지난 11일 전남 순천시청 앞에서 열린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 일방적 쌀 목표가격 폐지 저지를 위한 전국 동시다발 농기계 투쟁 선포식'에서 농민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트랙터를 앞세우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인의 날인 지난 11일 전남 순천시청 앞에서 열린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 일방적 쌀 목표가격 폐지 저지를 위한 전국 동시다발 농기계 투쟁 선포식'에서 농민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트랙터를 앞세우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분야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매년 반복되는 농산물값 폭락, 쌀 목표가격 폐지 논란 등 참담한 농업 현실과 문재인정부의 지속된 농정 실패에 분노한 농민들이 농기계 투쟁에 나서 현 정부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농업 정책에 분명한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농업인의 날’이었던 지난 11일을 시작으로 전국 농촌 곳곳에서는 3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아스팔트 위를 내달렸던 수많은 트랙터와 농업용 트럭이 다시 한 번 농로를 벗어나 농심을 알렸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행덕, 전농)은 농업인의 날을 앞두고 전국의 농민회 조직 및 연대 농민단체들에게 WTO 개발도상국 지위포기‧가격보장 대책 없는 변동직불금 폐지 등에 반발하는 동시다발적 농기계반납시위를 제안했고, 전국적으로 15개 광역 및 시군 농민회들이 대응에 동참했다.

전북에서는 지난 8일 익산시농민회가 익산시청에 나락을 적재한 데 이어, 농업인의 날 당일에는 3년 전 정권 퇴진을 위해 상경투쟁에 나섰던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들이 다시 한 번 정읍시청을 찾았다.

정읍시농민회‧정읍시여성농민회‧정읍시쌀생산자협회는 이날 정읍시청 앞에서 ‘WTO농업개도국지위포기‧직불제개악저지 전국동시다발 농기계반납 정읍농민대회’를 열었다. 100여명의 농민이 몰고 온 44대의 트랙터는 시청 측이 전면 주차장을 비웠음에도 전부 들어가지 못해 시청 앞 큰길에 세워졌다. 마찬가지로 탄핵 정국 당시 수많은 트랙터들이 참가했던 고창군에서도 지난 12일 농기계반납시위가 연이어 벌어졌고, 부안군농민회는 청사 앞에 나락을 쌓았다.

노환영 정읍시농민회장은 “현재 문재인정부에 이름이 없는데, ‘조삼모사’ 정부라 이름 붙여주려 한다”라며 “개도국 지위 포기, 직불제 개편 등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민들을 조삼모사 속 원숭이 취급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정읍에서는 농민들이 준비한 근조 상여가 불타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전남에서도 농업인의 날 순천과 강진 등지에서 트랙터들이 시군 청사 앞을 가득 메웠고, 영암과 화순, 장흥에서도 잇따라 시위가 진행될 예정이다. 순천에서는 농업인의 날 오전 전농 순천시농민회 회원 50여명이 트랙터 20여대와 트럭 20여대를 이끌고 순천시청 앞에 모여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 일방적 쌀 목표가격 폐지 저지를 위한 전국 동시다발 농기계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윤일권 순천시농민회장은 “농민들이 축제의 장을 열어야 하는 오늘 이렇게 거리로 나와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며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이는 농업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이제 우리가 문재인정부 포기를 선언하자. 트랙터로 논밭을 갈아엎듯 현 농정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이순례 순천시여성농민회장도 “농민은 식량안보를 지키는 공직자라며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농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며 “수십 년 째 계속된 농산물 가격폭락을 어떠한 해결책도 없이 농사짓는 농민들의 부담으로 돌려버렸다. 정부는 특단의 가격폭락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민들은 투쟁선포문에서 “개도국 지위를 가진 25년 동안 식량자급률은 21%로 곤두박질치고 도농 간 소득격차는 60%까지 벌어졌으며 매년 농산물 가격폭락에 신음하는 우리 농업을 선진국이라 말하는 이 정부가 과연 정상인가”라며 “일방적으로 쌀 목표가격과 변동직불금만 폐지하는 문재인정부의 직불금 개악안은 그냥 과거 농정적폐의 일환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오늘 농기계 투쟁을 통해 보낸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오는 30일,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의 생존권을 걸고 문재인정부와 싸울 것”이라며 “촛불의 불씨를 횃불로 만들어냈던 전봉준투쟁단의 기세로 적폐농정을 갈아엎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트랙터와 트럭마다 ‘농민수당 확대하라’,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하라’, ‘순천시는 태풍피해 보상하라’, ‘일방적 쌀 목표가격 폐지 반대한다’ 등의 현수막을 매단 농민들은 농기계를 앞세우고 시청을 출발해 순천문화원, 순천역, 검찰청 등 시내를 관통하는 행진을 벌인 뒤 전국농민대회에서 다시 모일 것을 기약하며 투쟁선포식을 마무리했다.

한편 전농 제주도연맹은 마대 자루를 뒤집어 쓴 채 제주 농업인의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항의의 뜻을 내보였고, 전농 부산경남연맹과 강원도연맹도 각각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을 선포했다. 전국의 농민회는 전국농민대회가 열리는 오는 30일까지 산발적으로 시위를 이어가며 대회의 판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지난 11일 정읍시청 앞에서 ‘농기계반납 정읍농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우준 기자
지난 11일 정읍시청 앞에서 ‘농기계반납 정읍농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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