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분야 개도국 조건에서 쓸 수 있는 ‘농업보조금’을 불과 15.5%만 집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2004년 쌀 수매제 폐지 이후 정부가 집행한 농업보조금 총액은 급감했다. 쌀 수매제 폐지와 이후 보조금 급감이 겹쳐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손해가 가중된 것이다. 지난달 25일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발표에 따라, 보조금 상황은 더 열악해질 전망이다.
WTO의 보조금은 크게 무역왜곡효과로 감축의무가 있는 보조금(무역왜곡보조)과 허용보조금으로 나뉜다. 무역왜곡보조에는 감축대상보조(AMS)와 최소허용보조(DM), 블루박스(BB)가 있다. 무역왜곡 효과가 없거나 가격지지 효과가 발생하는 않는 허용보조 그린박스(GB)까지, 우리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농업보조금은 모두 4종류다.
김현권 의원실이 농림축산식품부에 요청한 ‘WTO 통보 농업보조금 이행 현황(1995~2015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1995~2015년)간 감축대상보조한도는 모두 195조8,049억원이었다. 이 중 우리 정부는 AMS·DM으로 30조3,844억원을 집행해 15.5%의 집행률을 기록했다.
특히 쌀 수매제 폐지 이후 정부의 농업보조금 집행실적이 크게 줄었다.
김현권 의원실이 매년 감축대상 보조금 집행 비율을 따져보니 △1995년~2004년까지 평균 27.1%(82조6,483억원 중 22조4,286억원)였고 △2005년~2015년까지 평균 7%(113조1,566억원 중 7조9,558억원)로 급감했다.
추곡수매제 폐지로 정부부담 농업보조금 ‘급감’
김현권 의원실은 “WTO 출범 이후 개도국 지위 아래 확보한 감축대상보조한도 집행비율이 2004년엔 22.3%에서 2005년 7.3%로 급격히 떨어진다. 이는 2004년 정부가 추곡수매제를 폐지한 탓이다. 정부는 농협에 쌀시장 격리에 따른 예산부담을 떠 넘겼지만, 예전 수준으로 농업보조금 집행 규모를 복원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제한없는 보조금 그린박스도 ‘인색’
우리 정부의 농업보조금 정책 문제는 또 있다. WTO에서 제한을 두지 않은 보조금인 그린박스(GB)는 농업총생산액 증가율과 비교해 거의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었다.
1995년 3조7,878억원이었던 GB는 △2005년 5조2,198억원 △2015년 7조3,643억원 등으로 집행됐다. 농업총생산액이 27조2,524억원(1995년)에서 50조8,430억원(2015년)으로 86% 늘어났으나 GB 집행비율은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또한 정부는 스위스, 일본 등 선진국들이 추진하는 보조금, 블루박스(BB)를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집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권 의원실은 “정부가 농업보조금의 전체 규모도 줄였을 뿐 아니라 농정을 선진화 하는 것도 게을리 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농업총생산액은 늘었지만 감축대상 보조금 집행비율은 지난 20년간 점점 줄었으며 1995년 8.7%로 가장 높았고 2009년 0.9%로 가장 낮았다. 그 결과 농업총생산액 대비 감축대상보조금 평균 집행률은 3.8%라는 초라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DDA 협상에서는 개도국의 경우 감축대상보조(AMS)를 8년에 걸쳐 39% 감축하는 대신 매년 1조430억원까지 지급할 수 있게 했다. 선진국은 5년 동안 45%를 감축해야 하고, 최소허용보조(DM)도 생산액의 6.7%에서 2.5%로 제한받는다. DDA 협상대로라면 우리나라의 AMS는 1조4,900억원에서 선진국 지급 상한액인 8,195억원으로 크게 축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