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토종쌀 막걸리를 담그다

  • 입력 2019.11.17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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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지난겨울 친구 영득이가 “논 5평만 구해줘, 토종벼 좀 심어보게” 하는 말에 “내랑 같이 해보자. 우리 신랑이 벼농사 짓는데 좀 도와주면 안 낫겠나?” 그렇게 토종벼를 심어보겠다는 일은 시작됐다. 토종벼 채종포 120평이 확보되고, 이왕 하는 것 채종포는 먹을 양도 안 될 터이니 맛이라도 보기 위해 150평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고, 둘은 다섯이 되어 벼꽃모임이 됐다.

황사가 뒤엉켜 먼지를 날리던 봄날, 그전에 구입하거나 증식용으로 얻은 나락 한 톨을 놓치지 않고 모판에 손으로 뿌리고, 섞이지 않도록 이름을 쓰고, 옮기고 하는 작업이 수차례 진행됐다. 부실한 듯 짤막한 듯 토종벼 모판은 품종에 따라 그 모양이 다양했고, 귀엽기도 신비하기도 했다.

채종포 150평에 손모내기를 하는 날, 새벽에 모여 몇 시간의 작업에 “이앙기가 부럽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는 이러지 말자”며 농담과 앓는 소리가 뒤섞인 채 그렇게 손모내기도 끝났다.

하지만 그 후부터 시작된 물 관리와 논두렁 풀치기, 연이은 태풍에 기웃기웃 넘어가는 벼를 바라보는 일까지 몇 달 동안 토종벼 논은 자랑이기도 걱정이기도 했다. 한여름 더운 볕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나와 달리 친구 영득이는 벼논을 부지런히 둘러보며 사진을 올렸다. 분홍빛 다백조는 놀라움이었고, 벼들 저마다의 까락과 모습에 관심 깃든 시선에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사진을 본 이들은 다백조 400평 논을 구경 왔고, 얼떨결에 다백조는 구경거리가 됐다. 지난 8월 마을에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ㅇㅇ이 논에 약을 잘못 쳐서 벼가 뻘겋게 타들어갔다고. 농사 망쳤다고.” 분홍색을 띤 다백조를 보고 난 소문을 뒤늦게 알게 된 남편은 “그게 아이고 토종벼라고 심어서 그래요. 갸는 원래 뻘개요”라며 마을 어르신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수확을 위해 벼꽃모임은 홀태기를 빌려오고, 들녘에서 멍석을 까는 등 야단법석이었다. 이번에는 채종포만 수작업으로 하고 그 외 논은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홀태 작업한 나락은 까락이 그대로 붙어있었고 토종찹쌀종인 흑갱은 산돼지 털처럼 느껴지는 검은색 털이 많기도 했다. 나락을 비비고 풍구 대신 선풍기에 부치고 하며 채종포 7종의 수확도 끝났다.

그리고 영득이와 올봄에 세운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토종벼 5종 막걸리 담기. 그렇게 막걸리를 담기 시작했다. 토종벼 농사는 수확량이 일반품종에 비해 50~60%정도 됐다. 토종벼 농사를 수확량에만 가치를 둘 수도 벌이에만 둘 수도 없다. 그대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을 뿐.

가을걷이가 한창일 무렵, 농업분야의 개도국 지위 포기라는 황당한 소식을 접해야 했다. “호미 한 자루 쥐어주고 첨단 기계 영농이 완성됐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겨울을 앞두고 봄에 피어야 할 사과꽃이 많이 피었다고 한다. 그럼 내년에 필 꽃이 없는 것이다. 내년에 그리고 다음에 먹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마지막 밥 한 그릇을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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