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창경원② 동물과 사람이 항생제를 나눠 먹었다

  • 입력 2019.11.1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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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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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봄, 김정만이 대학졸업 후 수의사로서 첫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창경원이었다.

-축하하네. 자네가 서울대 수의학과를 나온 재원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네. 어이, 이 선생, 김정만 씨 데리고 가서, 오늘 아침에 죽은 백곰 해부 좀 같이 하지.

출근 첫날, 김정만은 원장의 지시에 따라서, 병에 걸려 죽은 백곰을 해부하기 위해 선배 수의사인 이영범을 따라나섰는데, 그때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이러했다.

-그런데 백곰이 왜, 어쩌다 죽었는데요?

-오진이야. 헛다리짚은 거지. 작년에도 사자 한 마리가 비실비실하기에, 소화기 장애인 줄 알고 위염 치료 항생제만 들입다 먹였었는데, 죽은 뒤에 해부를 해보니까 엉뚱하게 간하고 폐가 못 쓰게 돼 있더라구.

-아니, 진찰을 좀 제대로 하지 왜 그렇게….

-자네 같으면 청진기나 엑스레이 사진기 들고 호랑이 우리에 들어갈 수 있겠어?

마취 총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그저 눈으로 관찰하여 병명을 어림하는 시진(視診)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눈곱이 끼었는지 보거나 혹은 배설물을 살펴보는 정도가 고작이었고, 상태가 심각하다 싶어도 테라마이신이라는 항생제를 먹이에 감춰서 던져주는 게 유일하다시피 한 치료였다. 그나마 받아서 삼키면 다행이지만, 쓴 맛이 강하니까 걸핏하면 뱉어버리기 일쑤였다고 김정만 씨는 회고한다.

출근 첫날, 김정만은 선배를 도와 백곰의 사체를 해부한 데 이어서, 상태가 안 좋은 다른 동물들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는 등 나름으로 열심히 수의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선배 수의사 이영범은, 김정만이 작성해서 가져간 그 날의 진료일지를 보자마자 북 찢어버렸다.

-항생제 투약 내역을 이런 식으로 적어놓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호랑이하고 곰, 그리고 낙타한테 테라마이신 투약을 했으니까 그대로 적었는데….

-그걸로 투약이 끝난 게 아니라네. 진짜로 약을 먹여야 하는 짐승들이 따로 있거든.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고, 머리에 검은 털이 난 짐승한테는 아직 투약을 안 했잖아.

선배 수의사는 투약일지에다, 멀쩡하고 쌩쌩한 코끼리와 원숭이와 사자에게도 항생제를 투약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썼다.

“수의사가 동물을 진찰한 다음에 처방전을 작성해서 약을 떼다가 투약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투약 일지를 보니까, 가령 백곰 한 마리한테 항생제를 여러 날 계속해서 먹인 걸로 돼 있어요. 실제로는 그 중 반 이상은 ‘머리 검은 짐승들’한테 투약한 거지요. 그때 내 월급이 1천800환(圜)인가 그랬는데 테라마이신 한 병에 3만환이 넘었거든요.”

그렇게 빼돌려진 항생제는 돌고 돌아 결국 창경원 간부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거나, 혹은 그들이 인근 낙원동 기생집에서 명월이나 옥향이의 수발을 받으며 먹고 마시는 데에 쓰였다.

김정만 씨가 2001년에 나를 만났을 때 ‘이제는 말할 수 있으니까’ 들려주는 거라고 털어 놓은 얘기다. 그런 음습한 비리에 항거했다가 쫓겨날 뻔했다는 사연 등은 생략하기로 하고.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김정만이 창경원에 수의사로 부임했을 때가 동물원이 개원한지 물경 50여년이나 지난 시점인데도, 그 동안의 동물 관리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방이 되자 일본 놈들이 철수하면서 다 태워버렸어요. 자료만 없앤 줄 아세요? 당시 ‘히구치’라는 일본인 원장의 지시로 150마리나 되는 맹수들을 독살하고 가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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