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생산자와 소비자를 지원하는 농정

  • 입력 2019.11.17 18:00
  • 기자명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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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달 25일 정부는 미래 농업분야 협상에서 WTO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는 미래 협상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협상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고, 당분간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라는 결정 앞에 다소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피해를 보상하는 농정이 아니라 투자하는 농정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안으로 공익형직불제 시행만 내놓았을 뿐, 무엇에 투자하겠다는 것인지 여전히 구체성은 낮았다.

우리나라도 선진국형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데, 개도국과 선진국 농정은 무엇이 다른가? 선진국이 보조금을 적게 준다기보다 보조금 항목이 다르다고 보는 편이 맞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농업총생산 대비 보조금 비율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OECD 데이터에 의하면 OECD 평균 10.6%, EU 17.1%, 미국 7.6%, 일본 10.3%인 반면, 한국은 6.7%에 불과하다. 여기서 보조금은 생산자지지추정금액(PSE)에서 시장가격지지금액(MPS)을 뺀 금액을 의미한다. 즉, 생산자 지원금 중 시장가격지지 부분을 제외한 것이 보조금이라는 것이다. 시장가격지지 부분을 제외한 지원 비율은 한국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WTO 협정에서 설정한 허용보조(Blue Box) 항목도 선진국에 유리하다. 허용보조 항목은 정부서비스(R&D, 병해충 방제·방역, 교육·훈련, 경영지도, 농산물검사, 유통촉진, 시장정보, 댐·도로 등 농업하부구조 개선),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과 식품지원, 직접지불, 소득보험 등이다. 즉, 선진국 농정은 정부의 직접개입을 통해 시장가격을 지지하기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지원과 생산자 서비스 구축 및 운영이 주된 지원항목이라고 볼 수 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우리 농정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공익형직불제 규모 확보가 필요하다. 2020년 공익형직불제는 3조 규모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TF에서는 공익형직불제 규모를 5조2,000억원으로 산출했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꼭 확보되길 기대한다.

두 번째 소비자 직접지원이 필요하다. 지역단위 푸드플랜 수립을 통해 공공급식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단위에서는 사회복지기관, 공공기관 등 급식에 로컬푸드를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한다면, 국가단위에서는 농촌 고령자와 저소득층 대상의 식품지원 예산 수립이 필요하다. 지갑이 얇은 사람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먹으라고 강요하긴 어렵다. 애국심도 가성비 앞에선 쉽게 무너진다.

세 번째 지역 생산자서비스 구축이 필요하다. 해마다 농업생산비는 증가한다. 이에 개별 농가의 서비스 구입지원이 아니라 지역 공유서비스로의 투자가 필요하다. 농가에서 농기계와 농기구는 사도사도 부족하지 않은가. 영농철에 잠깐 쓰고 넣어놓은 농기계나 농기구는 창고에 널려 있는데 쓰자고 들면 뭔가 부족하다. 택시와 집도 공유하는 시대에 농업 생산자서비스를 공유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교육·훈련, 경영지도 서비스 지원기관이 농업기술센터, 농협, 농자재 회사, 컨설팅 회사 등으로 다양화되긴 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해마다 해외로 날아가 농업기술을 배워온다. 지역에 양질의 생산자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 지역에 교육·훈련, 경영지도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충분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달리는 차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방향키를 쥔 이들의 안일한 태도와 모호한 목적지 설정으로는 그 방향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지역 농민단체 대표 한 분이 “농산물 무역장벽이 없어진 시대다. 우리농업의 미래가 없다면 빨리 얘기해 달라. 희망고문으로 농민들을 죽도록 두지 마라”는 말씀에 가슴이 철렁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가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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